-배중사영(杯中蛇影)과 의심생암귀(疑心生暗鬼)

오늘은 착각(錯覺)과 관련된 얘기를 다룬다. 다음은 응소(應邵)가 기록한 풍속통의(風俗通義)에 있는 스토리.

나의 조부 응침(應郴)이 급현의 수령으로 있을 때 일이다.

주부(主簿) 벼슬하는 두선(杜宣)이란 이가 하지(夏至)를 맞아 찾아오자 술을 하사했는데 때마침 북쪽 벽 위에 걸려있던 붉은 색상의 활[]이 술잔에 비쳐서 술잔 안에 뱀이 든 형상이었다. 그림자를 실제 뱀으로 착각한 두선은 두렵고 꺼림칙했지만 수령의 면전에서 감히 마시지 않을 수 없어 그냥 삼켰다.

그날부터 두선은 가슴과 배의 통증이 생겨나서 먹고 마실 수가 없을 정도여서 갖은 치료법을 썼으나 전혀 치유되지 않고 병세가 갈수록 심각해졌다.

한참 후에 응침이 다른 일로 길을 가다가 두선의 집에 들러 두선을 만나 병세를 묻자 두선이 하짓날 술잔 속 뱀을 들이킨 사연과 함께 뱃속에 뱀이 들어 있어 몸이 아프고 맘이 두려워 고통스런 형편을 밝혔다.

관청으로 돌아온 응침은 그 일에 대해 오랫동안 곰곰이 생각을 거듭하다가 벽에 걸린 활을 발견하고 나서 틀림없이 활의 그림자 때문에 발생한 변고임을 알아차렸다. 즉시 사람을 시켜 아픈 두선을 가마에 태워 오게 한 후 예전처럼 술상을 차리고 두선이 술잔을 들자 여전히 술잔 속에 뱀이 꿈틀거리고 있는 게 아닌가?

놀란 두선에게 응침이 북쪽 벽 위의 활을 가리키며 저 그림자가 술잔 속 뱀 형상의 실체임을 알려주었다. 상황을 제대로 파악한 두선이 몹시 기뻐했고 곧바로 심한 병증이 사라지고 편안해졌다. 두선은 그 후로 관직이 장관 격인 상서(尙書)에 이르는 등 위명을 떨쳤다고 한다.

이와 비슷한 이야기가 진()나라 악광(樂廣)과 그의 지인 사이에서도 있었다고 하는데 이런 일을 배경으로 한 성어가 배중사영(杯中蛇影:잔 속에 비친 뱀의 그림자)’이다.

<사진: 영화 최종병기-활 포스터>

이런 얘기는 서양에도 있다. 알프스 산을 오르던 한 청년이 힘이 들고 목이 심히 말랐을 때 마침 시원한 계곡물을 만나서는 급하게 계곡물을 들이켰다. 갈증을 해소한 청년이 눈을 들자 미처 발견하지 못했던 바로 옆 게시판에 'POISON' ()’이라는 큰 글자가 써 있었다.

독이 들어 있는 물을 마셨다고 생각한 청년은 그 즉시 구역질과 열이 나면서 몸이 아프기 시작했다. 마구 달려 하산하고 병원을 찾아 진료를 받았지만 실제로는 아무런 이상이 없었다. 청년이 병원에 오게 된 사연을 듣고 있던 의사가 청년에게 그 게시판에 'POISSON' ’(프랑스어)물고기 낚시라고 써 있는 걸 착각한 것이라고 말해 주었다. 그러니까 그 게시판은 독이 든 물이니 마시지 마시오가 아니라 여기서는 낚시하지 마시오라고 경고하고 있었던 것인데 철자를 잘못 읽어 생긴 오해라고. 이 청년의 병이 나은 것은 두말할 필요도 없다.

이 역시 착각으로 말미암은 의심이 귀신을 불러일으킨다는 의심생암귀(疑心生暗鬼:의심이 귀신을 불러온다)‘의 경우다.

<사진출처:https://blog.naver.com/jikeme/220386810241>

어쨌든 이들 이야기는 착각과 의심이 무서운 결과를 불러올 수도 있지만 사실을 제대로 알고 나서 좋아졌다는 이른바 해피엔딩 스토리들이다. 문제는 그 반대의 경우이다.

만약 진짜 뱀을 활의 그림자로 착각한다든지 게시판에 독 함유 물, 마시지 말 것이란 경고를 낚시 금지로 알아서 그 물을 마신다면 상황은 걷잡을 수 없게 악화하고야 만다.

수많은 인파가 좁은 지역에 한꺼번에 집중되어 숱한 젊은이를 희생시킨 최근의 일로 온 나라가 슬픔에서 아직도 헤어나지 못하고 있다. 사람이 많은 서울이니까 여기저기 늘 사람이 많이 모였고 그때마다 괜찮았으니까 이번에도 괜찮을 것이라는 위험한 착각이 방심을 낳아서 참혹한 결과를 초래하고야 말았다. 애타는 112신고가 여느 때의 다소 급한 정도로 인식되고 조치가 이루어지지 않은 점이 너무도 뼈아프다. 이제부터라도 국가도 정부도 그리고 개인도 착각하지 않도록 늘 깨어 있도록 주의할 일이다. 꺼진 불을 다시 돌아보는 심정과 자세로 조심하고 또 조심하며 살아가야 할 것이다.

삼가 희생자 여러분과 유가족들께 조의(弔儀)를 표한다.

 

 

한문 및 한자 풀이

杯中蛇影 -배중사영: 잔 속의 뱀 그림자

() =로 쓰기도 함.

() 가운데

()

() 그림자

 

疑心生暗鬼-의심생암귀: 의심이 귀신을 불러온다

() 의심하다

() 마음

() 생기다 태어나다

() 어둡다

() 귀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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