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 밖 학교 이야기 10
2박 3일 도산서원 선비문화수련원 체험
선비정신, 사람됨의 첫 출발
알묘례(謁廟禮) 봉향관으로 선발 체험
도산서원 탐방과 퇴계선생 삶 조명
김병일 이사장이 전하는 퇴계선생의 가르침
도산서원은 퇴계 이황의 학문과 덕행을 추모하기 위하여 경상북도 안동시 도산면 토계리에 세워진 서원으로, 퇴계선생께서 직접 건물을 짓고 생활하던 서당영역과 사후 건립된 서원영역으로 나누어져 있다. 2019년 7월 10일 도산서원을 포함 9개의 서원이 탁월한 보편적 가치(Outstanding Universal Value)를 인정받아 한국의 서원으로 세계유산에 등재되었다. 도산서원 선비문화수련원은 한국 전통문화의 본질로써 우리 국민의 정신문화를 선도해 온 선비정신을 이어받아, 인간의 도덕성을 개인의 내면뿐만 아니라 국가사회로 확산하는데 기여하고자 2001년 11월 1일 개원하였다. 설립 20주년 만에 100만 명의 수련생들이 퇴계 선생의 선비정신을 체험하였다고 하니, 백문이 불여일견이라 퇴계 삶의 현장을 직접 보고 느끼는 기회를 체험해보기로 했다.
■ 공수(拱手) 인사로 시작되는 연수 체험
공수 인사는 한국의 전통예절로 두 손을 앞으로 모아 맞잡고 아랫배 부근에 놓고 허리를 숙여 인사하는 방법으로 의식 행사나 전통 배례 또는 웃어른 앞에서 공손함을 표현할 때 행하는 인사법이다, 절할 때 두 손을 모으는 것도 바로 이 공수 인사이다. 남자는 왼손, 여자는 오른손이 위로 올라가는 것이 원칙이며, 유치원 아이들이 많이 실천하고 있는 인사법인데 고학년으로 갈수록 공수인사가 사라지는 게 현실이다. 어른이 되어 체험해보니 처음에는 어색함이 있지만 상대방을 공경한다는 마음으로 인사를 나누게 되니 그 의미가 새롭다.
■ 도산서원 알묘체험
도산서원으로 가는 길에 추적추적 가을비가 내린다. 추분 절기에 내리는 비는 곡식들이 영글어야 하는 시기여서 득보다는 실이 많다고 하는데, 도산서원 체험도 비로 인해 불편함이 많아질까 쓸데없는 걱정이 앞선다. 일반적으로 서원은 훌륭하신 분의 사후에 건립되어 대부분 생전에 이용한 건축물을 볼 수 없지만, 도산서원은 위패를 모신 선현이 생전에 계시던 유작을 그대로 볼 수 있는 보기 드문 서원이다.
도산서당은 퇴계선생이 직접 설계하고 건립한 서당으로 친필글씨가 재미있게 표현되어 있다. 아마도 서당을 찾는 아이들의 마음을 헤아려 쓴 퇴계선생의 마음이 담겨져 있는 듯하다. 방과 마루. 부엌이 각각 한 칸으로 당시의 지위나 명성에는 많이 부족한 듯 느껴지지만, 당초 설계보다 너무 크다고 말씀하셨다고 하니 선생의 검소한 삶을 느낄 수 있었다.
퇴계선생 사후에 지어진 전교당(典敎堂)에 올랐다. 전교당은 유생들이 자기수양을 하고 학문을 배우며 토론하던 곳으로 서원의 중심건물이다. 옛 선비들처럼 유복으로 갈아입고 유건을 쓰고 백록동규를 성독(‘聲讀’은 조선시대 선비들이 경전을 공부하는 방법의 하나로 리듬을 이용해 경전을 소리 내 읽는 선비들의 공부법을 뜻한다)했다. 선비들의 공부 방법을 흉내 냈을 뿐인데 색다른 감회가 느껴진다.
이어서 알묘례(謁廟禮)가 진행되었다. 알묘란 서원이나 향교에 모셔진 선현의 위패에 참배하는 의식으로, 상덕사에 모셔진 퇴계 선생의 위폐 앞에서 인사를 드리는 의식이다. 비가 내려 연수생 모두 사당 참배가 어려워 대표자를 선정했는데 운 좋게도 분향관으로 선정되어 직접 참배의 기회를 얻었다. 알묘는 분향, 재배, 봉심의 세 단계로 진행되었다. 봉심(奉審)이란 가까운 거리에서 위패를 보고 인사를 드리는 의식으로 퇴계선생의 위폐는 관직 없이 퇴도이선생(退陶李先生)이라고만 적혀 있었다. 사후 그의 비문에도 일체의 관직을 기록하지 말라고 하신 유언의 뜻을 되새길 수 있었다.
■ 퇴계명상길 걷기
둘째 날 새벽 5시 30분에 퇴계명상길을 걸었다. 퇴계명상길은 한서암과 도산서당을 오가는 1.5Km의 산길로 450여 년 전 퇴계선생이 매일같이 걷던 길이다. 아직 해가 뜨지 않아 어두운 사방을 휴대폰 기능을 살려 길을 밝혔다. 내 발걸음을 위한 것보다 다른 사람을 위한 불밝힘이다. 산길을 오르며 마음을 비우는 길이기도 하다. 산마루에 도착하니 어슴푸레 밝아오는 여명을 무대로 새소리와 물소리, 바람에 나부끼는 나뭇잎소리가 하모니를 이룬다. 산을 내려와 주차장에서 도산서원에 이르는 추로지향길을 맨발로 걸었다. 어제 내린 비로 고운 흙이 쓸려 내려간 흙길에 모래들이 봉긋봉긋 솟아 있다. 걸음을 옮길 때마다 발바닥을 찌르는 촉감이 따끔하다. 육중한 내 몸이 작은 모래에 휘청거린다. 돌아오는 길에 어둠으로 볼 수 없었던 알밤들이 떨어져 길 위에 나뒹구는 모습이 보였다. 신나게 줍는 사람들 사이에 끼어들어 알밤 몇 개를 주워 숲속으로 던져 보냈다. 겨울을 준비하는 동물들의 먹이랄까. 하늘이 구름 사이로 피어오르고 있다.
■ 퇴계 선생 종손을 만나다.
퇴계종택을 방문해서 퇴계선생의 16대 종손을 만났다. 전통방식으로 큰절로 인사를 나누었는데 아흔을 넘기신 몸으로 무릎을 꿇고 내방객을 맞이하시는 정갈한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상대에 대한 지극한 공경의 마음을 스스로 무릎을 꿇는 자세로 표현하신다고 한다. 상대방 무릎을 꿇게 하려고 안간힘을 쓰고 있는 현실에 귀감이 된다. 청력을 잃어 소통이 불편함에도 메모로 소통을 하시면서 안내를 해 주시고 흰 봉투에 친필을 담아 선물로 전해 주시는 손길이 따스했다. 조복(造福). ‘복은 받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만들어 가는 것이다’라는 가르침이 울림으로 전해진다.
■ 김병일 도산서원선비문화수련원 이사장을 만나 퇴계선생의 선비정신이 현대인들에게 주는 가르침에 대해 들어보았다.
현대인들이 열심히 공부하고 노력해서 과거보다 훨씬 잘살게 되었는데 잃은 게 너무 많다는 생각입니다. 사람과의 관계가 멀어지고 행복하고 편안하다는 생각보다는 후회하고 원망하고 미워하는 마음들이 많아졌어요. 그러한 현상들이 사회 곳곳에서 나타나고 있어요. 왜 우리가 이런 힘든 삶을 살아야하는가 되돌아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되찾아야하는 것, 배워야하는 것들의 문화 한복판에 퇴계의 가르침이 있다고 봅니다. 사람답게 살면서 위대한 목표를 향해 끊임없이 노력하는 삶의 지혜를 본받는 것이 퇴계선생의 가르침이 아닐까요?
고조비오사(高蹈非吾事)
거연재향리(居然在鄕里)
소원선인다(所願善人多)
시내천지기(是乃天地紀)
높은 곳에 머무르는 것은 내 할 일이 아니니
고향 마을에 조용히 거쳐하면서
이 세상에 착한 사람이 많아지기를 소원하네
이것이야말로 천지가 제자리를 잡는 것이기에.
착한 사람이 많아지는 세상을 꿈꾸었던 퇴계선생. 시험지에서 수없이 보았던 부모에게 효를 다하고 나라에 충성하는 길을 현대인들은 어떻게 해석하고 살아가고 있는지 돌아오는 내내 마음의 숙제로 남는다.
※ 도산서원선비문화수련원 :경상북도 안동시 도산면 백운로 268-6 (토계리468-4번지) 대표전화 054-851-200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