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낌없이 주는 나무 옻나무의 재배, 채칠의 모든 것
최고의 옻으로 옷을 입는 아름다운 나전
1년 자란 묘목의 푸른 잎이 2천여 평 밭을 초록 물결로 만들었다. 이달 중순경이 되면 붉은 단풍으로 온 동네가 환해진다는 옻나무 밭이다. 보기엔 아름다운 단풍이지만 함부로 만지면 옻이 올라 피부병을 유발한다는 독성을 지닌 옻나무. 그러나 아낌없이 모두를 우리에게 준다는 옻나무.
평생을 옻나무와 함께하면서 신지식인으로 선정되고, 기능 전승자로 선정된 안영배 옻 채칠기능장을 만나 세계 최고의 품질을 자랑하는 원주 옻나무 재배와 채칠 이야기를 듣는다.
Q: 옻나무 밭이 넓은데 몇 평이나 될까요? 그리고 저 나무들은 몇 년 자란 나무들인가요?
A: 2,000여 평에다 올봄에 심은 1년 자란 나무인데 1미터 정도 자랐지요. 옻나무는 초기 생장이 빨라서 묘목 식재 후 활착이 시작되지만, 제대로 된 나무를 얻기 위해서는 2~3년간 관리가 아주 중요합니다.
Q: 이렇게 자란 나무가 몇 년 자라면 채칠을 할 수 있나요?
A: 8년 내지 10년 정도 자라야 채칠을 합니다.
Q: 채칠이 끝난 나무는 지금 어디 있나요?
A: 채칠을 하고 나면 늦가을쯤에 나무를 베어내는데 올해는 채칠을 하지 않았습니다. 판로도 어렵고, 이 일에는 이제 계승자가 없다고 봐야 할 것 같아요. 수입도 시원찮은데 요즘 젊은이들이 이 힘든 일을 하겠습니까?
Q: 원주 옻 하면 세계적으로 으뜸으로 알려져 있고, 원주 특산품으로 유명한데 무슨 말씀이신지요?
A: 남이 하니까 쉬워 보이는지 몰라도 참 어렵고 특별한 기술이 없으면 힘든 일이 옻나무 키우는 일이고 채칠 작업입니다.
제가 숙련기술전수자, 기능전승자, 신지식인으로 지정되었지만 배우겠다는 젊은 사람도 없고, 누구보고 배워보라고 권유도 못합니다. 우선은 돈이 안 되는 것이 이 옻나무 재배와 채칠이다 보니까요.
Q: 원주시 특산품인데 지자체에서 옻 진액 생산 과정에 어떤 밑받침이 되지 않습니까?
A: 현재까지는 아무것도 없지요. 저는 사실 문화재 지정을 몇 번 신청했는데 단순 농업인 취급만 받아서 마음의 상처만 키우게 되었지요.
17세부터 이 일을 했는데 51년간 옻나무 일에만 종사했습니다.
Q: 아드님과 통화를 했었는데 밖에 나와 있다고 하던데 어디 가셨나요?
A: 아들이 6년간 함께 일했는데 채칠을 해놓아도 쉽게 팔지도 못하고, 팔아도 수금도 어렵고 하여 전라도로 일하러 갔어요. 풀 베는 작업을 하러 갔는데 가슴이 아프지요. 아비가 하니까 계승하려고 시작했었는데 자식 낳아 키우려니 돈이 필요해서 일당 벌이하러 갔는데 말리지 못하는 이유는 경제적으로 어려워지니 어쩔 수가 없지요.
Q: 원주에는 채칠 기술자가 몇 명이나 있는지요?
A: 이제 4명 남았습니다. 세계 최고의 옻이라고 말만 했지, 현실적으로 돈이 안 되니까 다 떠났지요. 17명이 있었는데 지금 제자 2명과 친구 1명 남아서 채칠을 하는데 언제까지 하게 될지 저도 모르겠습니다.
Q: 식재는 누구나 할 수 있겠지만 채칠은 아무나 할 수 없는데 이러다 보면 원주 옻의 명맥이 위태로운 것 아닌가요?
A: 이대로라면 어렵다고 봐야지요. 제가 어렵게 시작하고 공들여 끌고 온 일이라 안타깝지만 현재로서는 저도 어쩔 수 없는 일이지요.
Q: 텔레비전이나 신문 등 여러 매체를 통해서 여러 번 소개된 걸로 알고 있는데, 홍보 효과는 있는지요?
A: 방송은 많이 했지요. 작년 7월에도 <코리아 넘버 원> 다큐멘터리도 촬영했지요. 유재석, 김연경, 이광수 등 유명인들이 와서 원주 옻 채칠 과정과 나전칠기의 아름다움을 촬영했지요. 원주 옻이 세계 최고라고는 하지만 값싼 중국산 옻에 밀려서 경쟁력을 잃었지요.
Q: 품질이 세계 최고인데 중국산에 밀리는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이 있을까요?
A: 저는 정부나 지자체에서 판로를 개척해 주어야 한다고 생각을 합니다. 기술전승자라는 명패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기술을 익힌 사람이 먹고 살 방법을 해결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주었으면 합니다. 채칠 한 옻은 물론이고 저기 좀 보세요. 저 나무가 약 50톤은 될 겁니다. 몇 년째 팔지 못하고 썩어지게 생겼지요.
Q: 저 나무들은 무엇에 쓰이나요?
A: 채칠하고 베어낸 나무인데 파쇄해서 물을 낸 후 식용이나, 공업용이나 여러 가지로 쓰이지요. 옻나무는 버리는 부분이 없어요. 칠은 칠대로, 베어낸 나무는 나무대로 다 쓸모가 있지요. 그런데 저 것 조차도 팔지 못하고 있으니 누가 일을 합니까?
Q: 어머 어마한 분량이네요. 채칠 한 옻은 팔지 못하고 얼마나 보관하고 계시는지요?
A: 많지요. 작년에 채칠 한 것도 창고에 쌓여 있습니다. 4KG에 300만 원인데, 일 년에 약 1200KG을 채칠 합니다. 그러니 판로가 순조롭지 못한 지금, 얼마나 속이 타겠습니까?
Q: 두 손이 거칠어진 모습이 보니 힘든 작업임을 알 것도 같습니다. 채칠 할 때 작업 도구는 어떤 것을 사용하나요?
A: 나무 굵기에 따라 큰 칼, 작은 칼을 구분해서 사용하지요.
Q: 채칠 시기에 따라서 성분이나 품질에 차이가 있나요?
A: 시기에 따라 다르고, 나무마다 다르고, 토질에 따라 다르지요.
칠을 해 놓으면 확연히 차이가 납니다.
가장 더운 5월에서 10월 초까지 채칠 한 옻이 가장 좋습니다. 원주는 토양이 옻 재배에 적합해서 옻이 좋지요. 중국산은 수분이 많아서 작품을 만들어 놓으면 다릅니다.
Q: 세계적으로 으뜸이다 보니 해외에서도 원주 옻에 관심이 많다고 알고 있는데요.
A: 특히 일본에서 우리나라 옻에 대해서 아주 관심이 많습니다.
일본에서는 매년 우리 옻에 관심을 가지고 재배법이나 채칠 과정을 공부하러 옵니다. 올여름에도 왔다 갔지요. 이 감사장은 일본 ‘국제문화연구소 이사장이면서 국제칠문화연구소 고문으로부터 받은 것입니다.
나전의 아름다움을 마무리하는 것이 옻칠입니다.
옻칠은 수분을 막아주기 때문에 천년이 지나도 작품을 보존해 줍니다. 고대의 고분에서 출토된 유물을 보면 알 수 있잖아요. 옻칠한 나무는 썩지 않습니다.
Q: 채칠을 한 옻을 어떻게 나전칠기에 사용하나요?
A: 불순물을 잘 걸러낸 다음에 농도를 맞춰서 여러 번 칠을 하지요. 본래의 색으로 입히는 작품도 있고 색을 넣어서 사용하는 작품들도 있고요.
Q; 옻칠을 한 달항아리가 독특하고 아름다운데 구매 가격은 어느 정도일까요?
A: 하나에 1억 원 정도라고 알고 있어요.
Q: 장인의 손길을 이어받아 계승자가 맥을 이어야 하는데 걱정이 크시겠습니다.
A: 현재로서는 수입이 보장되지 않으니 어려운 일입니다. 우리 옻이 사양되고 나면 나전칠기도 저런 아름다운 빛을 내기는 어려워진다고 봐야 할 겁니다.
Q: 원주 옻의 보존을 위해 희망 사항이 있으신지요?
A: 충북 옥천에 가면 전승관이 잘 되어 있습니다. 우리 원주시에서도 기능전승자 육성도 해 주고, 옻칠 공예관에 전승 강의실도 마련해 주시길 희망하고, 무엇보다 원주 옻의 판로도 열어주면 좋겠습니다.
옻나무는 개인이 혼자 하는 사업으로는 힘든 일입니다. 최소한 8년을 키워야 옻을 채칠 하는데 한 번 채칠 하고 난 나무는 베어냅니다. 반복되는 이 작업을 해 놓아도 팔지도 못하는 것이 현실이고, 가끔씩 개인적으로 기술을 배우러 저를 찾아오는 사람도 있지만 극소수지요. 이런 현실에서 기능전승자라는 타이틀이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세계에서 최고로 인정받는 원주 옻이 명맥을 잃을지도 모르는 일이라 가슴 아픕니다. 대구시, 칠곡군, 정읍시, 옥천군 등 다른 지방에서는 시 군에서 관리를 하고 있지요. 우리 원주시에서도 원주 옻 보존을 위해 좀 더 관심 주시기를 저는 바라고 바랍니다.
씨앗으로 땅에 발을 딛고, 봄에 발아를 하고, 활착을 하면서 키를 키우는 옻나무의 생을 상상해 본다. 옻나무는 십여 년 동안 푸르고 붉은 잎을 피우고 몸을 키우다가, 온몸에 칼을 받아내면서 몸속의 흰 피를 흘려 옻 진액을 만들어준다. 상처 난 몸은 다시 베어지고, 쪼개지고, 으깨어지면서 약품을 만들고, 공업용 염료를 만들어주고 생을 완성하는 옻나무.
옻나무를 재배하고 채칠 하는 사람의 생도 별반 다르지 않다. 때로는 온몸에 옻 알레르기를 앓고, 경제적으로 힘들어도 시간과 마음을 다 쏟으면서 원주 옻의 명맥을 유지하고 있다.
다름없는 농부의 모습으로 비치는 현실이라는 이야기를 듣고 가슴이 먹먹하다. 옻 채칠 장인의 생활이 좀 더 안정되고, ‘원주 옻이 세계 최고’라는 이름에 맞는 명예로운 위치에 올랐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 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