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생들의 창의성을 살리는 교육현장이 되었으면 합니다

 

                                                                                (전) 공근중학교 원석규 교장선생님
                                                                                  (전) 공근중학교 원석규 교장선생님

 지난 8월 40년 교사생활을 마무리한 횡성 공근중학교 원석규 교장선생님. 아직도 본인이 퇴직을 했는지 실감이 나지 않는다는 원석규 전 공근중학교 교장선생님을 만나기 위해 기자는 시내 한 카페를 찾았다. 원석규 교장선생님은 교사로 정년퇴임을 한 분이라는 사실이 믿기지 않을 정도로 아주 건강해 보이셨다. 요즘도 테니스 레슨을 받을 정도로 아주 열정적으로 스포츠를 사랑하는 분이다. 기자와 만난 카페가 커피가 아주 맛있는 곳이라고 소개하면서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한 잔 권하신다. 

Q) 원 교장님, 퇴직한 지 채 한 달이 안 됐는데 어떻게 지내시는지요?

 잘 지냅니다. 아직 제가 교사로서 퇴직을 했다는 사실이 가끔 믿기지는 않지만 빨리 현실에 적응하려고 합니다. 그런데 아침에 눈을 뜨면 뭔가 서둘러야 하는데 그럴 일이 적으니 마음이 편하기도 하고 서운하기도 하고 좀 야릇한 기분입니다. 

 Q) 고향은 어디신지요?

 네, 제 고향은 원주입니다. 봉산동 철길 옆 동네에서 살면서 원주초, 대성중고를 다녔습니다. 대학은 타지에서 토목공학 전공에 물리학을 부전공으로 배웠습니다. 대학시절 물리학을 배운 게 인연이 돼서 중학교 과학교사로서 교사생활을 한 거죠.

 Q) 요즘도 테니스 레슨을 받으신다는데 어릴 적부터 스포츠를 좋아하셨나요?

 60, 70년대 초등학교를 다닌 대부분의 남자들이 축구를 좋아할 겁니다. 마땅히 즐길 스포츠가 없던 당시에 공 하나만 있으면 수십명의 학생들이 마음껏 뛰어놀 수 있으니 축구만큼 좋은 운동이 어디 있었겠습니까? 제가 초등학교 시절 브라질의 펠레 선수가 아주 인기가 높아서 저도 축구를 무척 좋아했습니다. 수업 중 휴식시간 10분은 물론이고 점심시간, 방과후에도 반 학우들과 축구만 했으니까요.    

 Q) 대학에서 부전공으로 물리학을 배운 게 인연이 돼서 교사로서의 길을 걷게 됐다고 하셨는데요, 처음 부임한 학교는 어디인지요?

 네, 당시에는 국립대를 졸업하면 임용시험을 거치지 않고 교사가 되는 제도가 있었는데, 1984년도에 주문진여중 과학교사로 임용을 받았습니다. 당시만 해도 주문진여중은 소나무숲이 교정을 감싼 아름다운 풍광을 지닌 학교였습니다. 교사로서의 생활을 시작한다니 가슴이 마구 뛰었던 기억이 새롭습니다.    

 Q) 주문진여중에 교사로서 부임할 때 지금 생각해도 황당한 일을 겪었다면서요?

 제가 주문진여중에 1984년 4월에 부임했는데, 1983년도에 서울에서 교사와 여학생간에 불미스러운 일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교육부에서 총각인 사람은 여중고에 발령내지 말라는 지침을 내렸습니다. 제가 당시 미혼이었는데 얘기를 하자면 길지만 우여곡절 끝에 주문진여중 교사로 부임하게 됐습니다. 수업시간에도 한 여학생을 5초 이상 보면 안 된다는 지침이 있어서 학생들 얼굴을 안 보고 교실 뒷벽만 쳐다보며 수업을 했던 황당한 일이 있었죠.    

 Q) 40년 교사생활을 하셨으면 꽤 여러 학교를 옮겨 다니셨겠네요?

 그렇습니다. 저도 기억이 헷갈릴 때가 종종 있습니다. 주문진여중, 옥동중, 상동중, 평원중, 학성중, 사북중, 갑천중, 강림중, 둔내중, 남원주중, 반곡중, 공근중 등이 제가 거쳤던 학교들입니다. 지금 보니 12개 학교에서 근무했는데 다 외우기도 힘들 정도네요. 언제 그 많은 학교에서 근무를 했는지 꿈을 꾸는 느낌입니다.

 Q) 근무했던 여러 학교 중 옥동중에서 근무할 때 당혹스런 일이 있었다면서요?

 옥동중학교는 영월에 있는 학교죠. 옥동 송어가 아주 유명한 동네입니다. 옥동중에 1989년도 8월말에 부임했는데 제가 3학년 담임을 맡았을 때 석탄산업합리화 정책이 시행되면서 학생들이 갑자기 타지로 전학을 가기 시작했습니다. 탄광에서 일하던 아버지가 탄광이 폐쇄되면서 직장을 잃으니 가족이 타지로 이사를 갈 수밖에 없었던 거죠. 학생들 절반 이상이 떠난 빈교실을 쳐다보니 만감이 교차하면서 서글프더군요.      

 Q) 영월에 있는 상동중 근무 당시 관사가 허름해서 고생도 많으셨다구요?

 상동읍이 워낙 오지이니 교사들이 마땅히 거처할 아파트 등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교사들이 학교 관사에서 생활을 했는데 겨울이 너무 추운 곳이어서 수돗물이 어는 겁니다. 추운 동네라 겨우내 수돗물을 틀어놓고 살림을 했습니다. 집사람 고생을 아주 많이 시켰죠. 지금은 그 때를 떠올리니 오히려 무척 그립네요.

 Q) 여러 중학교를 거치셨는데 원주 등 도시에 소재한 학교와 군 단위에 소재한 학교간의 분위기가 다른가요?

 당연히 다릅니다. 원주 등 도시에 소재한 학교의 성적 경쟁이 훨씬 치열합니다. 개인 등수는 물론이고 학급간 등수 등이 공개되니 교사들도 학생들도 모두 성적에 신경을 곤두세우게 됩니다. 반면에 군 단위에 소재한 학교는 학교 분위기는 물론 학생들도 그렇게 성적 경쟁에 목을 매는 상황이 아니라 근무하기에 조금 마음이 편한 편입니다. 너무 성적, 성적하면 교사로서 이건 아닌데 하는 생각이 들 때가 많았습니다. 

 Q) 과학을 가르치는 교사로서 제일 아쉬웠던 점이 있다면요?

 학생들에게 실험 위주의 충분한 수업을 못했던 것이 제일 아쉽습니다. 교과서로 과학을 배우기보다는 실험과정을 통해서 학생들 스스로 과학적 원리를 터득해야 창의성을 키울 수 있는데 제반 여건이 그에 미치지 못했던 것 같습니다. 실험 위주, 활동 위주의 교육이 교과서로 배우는 지식보다 훨씬 값어치가 있다는 것이 제 생각입니다. 

 Q) 제일 기억에 남는 확생을 꼽자면요?

 사랑도 첫사랑이 제일 기억에 남는다는 말을 하잖아요. 저는 초보교사로서 주문진여중에서 만났던 학생이 제일 기억에 남습니다. 그 학생은 털털한 성격이었는데 성격에 어울리게 남학생들이 많은 관심을 갖는 모형항공기 제작에 열심이었습니다. 모형항공기 날리기대회에도 여러번 참가했던 학생이었죠. 그 학생은 지금 서울에서 방과후 교사로도 활동하면서 초, 향수 만들기를 가르치고 있다고 합니다. 

 Q) 요즘 교단에 서는 후배교사들에게 하시고 싶은 말씀이 있다면요?

 제가 처음 교사로서 근무할 때와는 요즘 교사들의 생각이나 행동이 많이 다른 것 같아서 아쉬울 때가 있습니다. 저는 감히 교사로서 소명의식을 갖고 근무했다 생각하는데 요즘 일부 젊은 교사들이 자신들을 그냥 교사라는 직업을 가진 샐러리맨으로 생각하는 것 같아요. 교사는 소명의식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 제 생각입니다. 학생들을 훈육하려면 교사들 자신부터 교사라는 직업에 대한 인식을 바르게 가져야 할 것 같습니다. 

 Q) 2019년부터 4년간 공근중학교 교장으로서의 소임을 다하고 올해 8월말 정년퇴임을 하셨는데요, 앞으로 어떤 제2의 인생을 살고 싶으신지요?

 40년 교사생활을 마치면서 홍조근정훈장을 받았습니다. 가끔 그 훈장을 바라보면서 내 교사생활 40년이 국가에서 주는 훈장을 받을 만한 자격이 있었나 되돌아 봅니다. 많이 부족했다고 느껴집니다. 우선 학생들을 따뜻하게 대하지 못했던 것 같습니다. 학생들을 너무 시험보는 기계로 여겼다는 것이 자책감을 들게하는군요. 앞으로 남은 인생은 우선 건강을 지키는 일에 최선을 다하려고 하구요, 교사생활로 많은 시간을 함께 하지 못했던 집사람과 구경하고 싶었던 곳을 다니려고 합니다. 그리고 기회가 닿으면 봉사활동에도 나설 생각입니다. 이제 저도 국가나 학생들로부터 받았던 은혜를 갚아야 하잖아요.

 Q) 원석규 교장선생님, 오랜 시간 말씀 감사합니다. 건강하게 생활하시면서 우리 사회를 위해서도 좋은 일 많이 하시길 기원드리겠습니다.  

 네, 이렇게 부족한 저를 취재하시느라 수고 많으셨습니다. 기자님도 건강하게 행복하게 생활하시길 바라겠습니다. 고맙습니다. 

 원석규 교장선생님을 만나 인터뷰를 하면서 천직이란 것과 소명이란 것에 대해서 다시 생각해 보는 시간을 가졌던 것 같다. 요즘 젊은이들은 한 직업에서 40년의 세월을 봉직한다는 것의 의미를 어떻게 이해할까도 궁금했다. 나 자신은 요즘 무슨 소명을 생각하면서 살고 있을까. 하루하루 최선을 다하는 삶을 살도록 노력해야 한다는 다짐을 새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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