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주지역 최고 명문고의 위상을 더욱 높이겠습니다
원주고등학교(이하 원주고)는 고교평준화 이전 시절에는 누구나 인정하는 원주지역 최고의 명문고였다. 원주권 인근에서는 누구나 입학하기를 원하는 고등학교였고 그만큼 우수한 인재가 많이 몰렸던 학교였다. 한상철 전 원주시장, 김기열 전 원주시장, 함종한 전 국회의원, 이계진 전 국회의원, 이강후 전 국회의원, 원창묵 전 원주시장, 송기헌 국회의원, 이광재 국회 사무총장 등이 원주고가 배출한 기라성 같은 인물들이다. 언론계에 종사했던 기자의 남편도 원주고 출신임을 가슴 가득 자부심으로 품고 사는 사람이기도 하다. 이외에도 수많은 원주고 출신 인사들이 원주지역은 물론 우리나라를 위해 각계에서 맹활약 중이다. 원주고가 배출한 26,000명 가까운 동문들을 대표하는 원주고 총동문회. 개운동 치악교 인근에 자리한 총동문회 사무실로 기자가 방문했을 때는 연일 내리던 비가 그쳐서인지 습도가 높아 후텁지근한 오후였다. 유길선 원주고 총동문회장은 작은 체구에 온화한 미소와 눈웃음이 인상적인 분이었다. 총동문회장은 먼저 기자에게 더운 날 오시라고 해서 미안하다면서 시원한 음료수를 권했다.
Q) 안녕하세요? 원주지역 최고 명문고의 총동문회장님이라서 근엄하신 분인 줄 알았는데 너무 푸근한 인상을 가지셔서 제가 인터뷰하기에 한결 마음이 놓이네요, 더위에 어떻게 지내시는지요?
네, 올해는 유난히 더운 날씨가 많네요. 저는 잠시 더위를 피해 고등학교 동기 등과 시원한 몽골로 여행을 가서 며칠 시원하게 보내고 왔습니다. 한국에 돌아오니 다시 덥네요.
Q) 원주고 출신이니 고향은 원주시죠?
맞습니다. 그런데 제가 어린 시절에는 원주시와 원주군이 별도의 행정구역으로 존재하던 때라 엄밀히 말하면 원주군 호저면 만종리 출신입니다. 만종초, 대성중을 졸업하고 꿈에 그리던 원주고 입학시험에 합격했던 날이 떠오르네요. 정말 뛸듯이 기뻤던 날이었죠.
Q) 총동문회장님이 원주고에 1976년도에 입학을 하셨는데 당시의 원주고는 입학하기가 어려웠나요?
네, 원주는 물론 인근의 제천, 영월, 평창, 인제, 양구, 여주 등에서 공부 좀 한다 하는 수재들이 몰렸으니 입학시험 자체가 전쟁이었습니다. 당시로는 시골이었던 만종 출신의 제가 원주고를 입학한 것은 말 그대로 개천에서 용 나고 가문의 자랑이었습니다. 제가 입학시험에 합격했을 때 너무나 감격하셨던 부모님 모습이 갑자기 떠오르네요.
Q) 그렇게 꿈에 그리던 원주고에서 고등과정 3년 졸업하고 대학은 어디에서 다니셨는지요?
네, 서울로 유학을 가서 관광과를 전공했습니다. 이후 공부가 모자라는 것 같아 모 대학 법학과를 졸업했구요, 원주에 소재한 연세대 미래캠퍼스 정경대학원에서 석사를 취득했습니다.
Q) 평생 공무원으로 직장생활을 하셨다고 들었는데요, 첫 직장은 어디였는지요?
제가 1986년도 첫 직장생활을 시작한 곳은 태백시에 소재한 철암우체국이었습니다. 이후 여러 우체국을 옮겨서 근무하다 1993년도 원주군 선거관리위원회로 자리를 옮겼죠. 2021년 정년퇴직 할 때까지 여러 시군 선거관리위원회에서 재직했습니다.
Q) 원주고 총동문회와는 언제부터 인연을 맺으셨나요?
제 평생 가장 자랑스러운 이력인 원주고를 졸업했는데 총동문회와의 인연을 특별히 따질 것은 없지만요, 2005년도에 원주고 23회 동기회장을 맡으면서 총동문회 일에 본격적으로 나선 거죠. 당시 총동문회 일에 열심인 동기들이 몇몇 있었는데 저한테 동기회장을 맡아보래서 속으로는 무척 기뻤습니다, 훌륭한 동기들도 많은데 내게 과분한 것 아닌가 하는 생각도 하면서요. 불감청이언정 고소원이란 말이 있잖아요.
Q) 원주고 23회 동기회장 이외에 총동문회에서 다른 역할도 많이 하셨죠?
물론입니다. 총동문회 부회장도 했고요, 수석부회장도 지냈습니다. 원주고 체육후원회장도 역임했습니다. 제가 맡았던 자리가 주로 보직에 따른 회비도 나름 많이 내야 하는 역할이었습니다만 저는 원주고 동문들이나 모교를 위해 회비를 내는 것이 조금도 아깝지 않았습니다. 뼈 속까지 철두철미 원고인인가 봅니다.
Q) 그토록 자랑스러우신 원주고의 총동문회장으로는 언제 취임하셨는지요?
네, 작년 1월에 '함께 행복한 동문'이라는 슬로건 아래 25대 총동문회장으로 취임을 했습니다. 2년 임기이니 올해말까지 봉직하고 시원섭섭하지만 후배에게 중책을 넘겨줘야죠. 원주고 총동문회가 1967년도에 발기를 했으니 50여년의 총동문회 역사에서 제가 맥을 잇는 역할을 했다는 것에 뿌듯한 자부심을 갖고 있습니다.
Q) 원주고 총동문회장으로 2년 가까이 재임하시는데 어떤 사업에 역점을 두셨나요?
모교 교훈이 '스스로 더불어 알차게'입니다. 교훈에 '더불어'라는 단어가 있듯이 무엇보다 동문간의 화합을 최우선으로 추진했고요, 지역사회 발전을 위해서도 역할을 하고자 노력했습니다. 지금은 원주고총동문가족체육대회 이외에도 동문 골프대회, 당구대회, 바둑대회, 등산모임 등이 활성화돼서 동문들간 얼굴을 자주 보는 기회를 많이 마련하고 있죠. 원주시고교연합회 모임도 1달에 1회 참석해서 타 고등학교 동문회와도 교류의 폭을 넓히고 있습니다.
Q) 총동문회장으로 재임하시면서 아쉬운 점도 있으실 텐데요?
네, 아쉽다고 해야 하나 세태의 변화라고 해야 하나 좀 서운한 생각이 들 때도 있습니다. 요즘 MZ세대라는 단어를 많이 사용하잖아요, 젊은세대가 단체활동이나 어딘가에 소속되기보다는 개인주의 성향이 강한 것 같아요. 그래서인지 후배 기수들의 기별 동창회 결성이나 동문회 가입이 늦어져서 걱정을 하고 있습니다.
Q) 원주고 출신으로는 월남전에서 산화한 장소길 대위가 유명한데요, 원주고 교정에 장소길 대위 추모비와 흉상도 있다고 들었습니다만?
네, 장소길 대위는 말 그대로 위국헌신하신 참군인입니다. 모교 8회 졸업생으로 육군사관학교를 졸업하고 베트남 전쟁에 참전했다가, 1971년 작전 중 부하 장병들을 구하고 전사한 모범적인 군인이셨습니다. 총동문회 차원에서 동작동 국립현충원을 찾아서 참배하고, 현충일을 전후해서는 총동문회, 8회 동창, 모교 교직원 및 재학생 등이 모교 교정에 있는 장소길 대위 흉상에 추모의 꽃을 바치고 그 높은 뜻을 기리는 자리를 갖고 있습니다. 올해 모교에 장소길기념관을 설립한 것이 늦었지만 아주 잘된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Q) 총동문회장께서는 웰컴투원주관광대학 학장도 맡고 계신데요?
네, 웰컴투원주관광대학은 원주시관광협의회 산하 단체로 원주지역의 우수한 관광자원을 널리 홍보하고, 원주시민의 관광 요원화를 위해 설립한 모임이죠. 지금 매주 목요일 10기 교육과정 중에 있는데 문화관광해설사로 활동하실 분이나 관광봉사 재능기부를 하실 분, 원주시관광협의회에 행정분야 재능기부를 하실 분들의 참여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Q) 올해 강릉지역에 큰 산불이 났을 때 많은 이재민들이 발생했는데요, 총동문회에서 산불피해 동문에게 도움의 손길을 주셨다면서요?
강릉산불은 정말로 안타까운 일이었습니다. 많은 이재민들도 발생해 국민들의 마음을 아프게 했는데요, 전 재강릉원주고동문회장도 집이 전소됐다는 안타까운 소식을 접했습니다. 실의에 빠진 동문을 돕기 위해 총동문회가 주축이 돼서 10여일간 모금활동을 펼쳐 2,480만 원의 성금을 모아 전달했죠.
Q) 서너달 남은 총동문회장 임기 동안 마무리 짓고 싶은 일이 있다면요?
임기 동안의 많은 일들이 주마등처럼 스칩니다만 마무리를 잘 해야죠. 끝이 좋으면 다 좋다는 위안이 되는 말도 있잖아요. 해마다 하는 자랑스런 원고인을 선정해서 시상하는 일이 남았구요, 원고인 함께 걷기대회도 잘 치러야죠. 기자님도 제가 임기를 잘 마무리하도록 응원해 주세요(웃음).
따뜻하고 푸근한 인상의 유길선 원주고 총동문회장과 인터뷰를 하는 동안 지루함을 느낄 틈이 없었다. 워낙 달변이신 분이다. 깨알 같은 모교 자랑에 총동문회장 역할에 대한 자부심 등을 들으니 기자가 졸업한 고등학교 총동문회에 무관심했던 스스로가 부끄러웠다. 원주지역 최고 명문고인 원주고의 무궁한 발전과 총동문회가 동문간의 화합과 지역사회 발전에 큰 역할을 했으면 하는 바람을 가져보았다. 기자의 남편이 왜 그토록 원주고 졸업생임을 자랑으로 삼는지 이해가 가는 만남이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