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반기 정기인사기간 재직기간 중 최고의 오지로 인사발령을 받은 칼럼니스트 조예서의 이야기

*본 칼럼은 칼럼니스트 개인의 사견과 개인의 경험이 들어간 칼럼임을 알려드립니다.

[이미지 출처 : 오마이뉴스 완도신문, '조선시대 유배기록 40회, 유배 온 인물은 45명(https://n.news.naver.com/mnews/article/047/0002188626', 2018.05.08일 기사]

 

7월은 기업에서 하반기가 시작됨과 동시에 하반기 인사발령철이기도 하다.

기업의 인사발령이 그러하듯, 누구는 웃고 누구는 울 수 밖에 없는 구조인 것은 어쩔 수 없는 터.

나에게 있어 지난 13년 간의 인사발령에 대한 이야기를 해 본다면, 솔직히 울 일이 더 많았다는 것을 부끄럽지만 고백해 본다.

작년부터 본점부서에서 근무하던 나는 얼마 전 통영으로 발령이 났는데 그 지역은 소위 말해 부산 출신인 나에게 있어서는 '유배지 발령'이다. 

더 솔직해 지자면 당사자의 입장이 되면 기업에서는 '너 나가!'라는 말을 정규직인 나에게는 대 놓고 하지못해 견디기 힘든 발령을 내는 것이라고 이해하면 될테고, 솔직히 그러할테다.

인사발령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나는 겉으론 태연한 척 했지만 얼마나 속상했겠는가.

마지막 근무일이 되어 참 내 자신이 너무 초라하고 불쌍해 멍하니 있으니 이전 근무지 팀장이 그런 나를 보며 왜 그렇게 멍하게 있느냐며 묻는다. 솔직하게 내가 너무 초라하고 불쌍해서 그런다고 말했다. 이런 발령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내가 너무 싫다고 말이다.

누구는 그런 인사발령을 받게 되면 어떻게 저떻게 휴직계를 내기도 하고 피할 방법을 찾고자 고심하는데, 미혼이고 특별하게 너무 멀다는 것 말고는 원거리 근무를 하지 못할 방법이 없다보니 나는 핑계 댈 거리도 없다. 혼잣말로 결혼 못 한 것도 서러운데 이런 대접까지 받으니 참 인생이 고달픈 건 맞다고 생각해 보았다.

 

돌아보면 나는 고향 발령을 받기 위해 정말 노력해왔다.

신입 때 부터 타지근무를 했던 나는 숙소에 살던 직원들이 하나 둘 고향으로 돌아가는 걸 보면서 눈물만 흘렸던 기억이 난다. 신입 때 부터 5년 이상을 타지근무를 했는데 아무리 실적을 1등해도, 아무리 뭘 해도 나는 고향 발령을 받지 못했다. 승진도 바라지 않는다 그저 고향에만 좀 보내달라고 해도 절대 나는 그럴 수 없었고 고향발령은 고사하고 승진도 동기들 중 거의 꼴지로 했다. 지금 상황을 보면 내가 결혼을 한다고 해도 과연 기업에서는 나를 고향으로 보내 줄 지도 의문이다. 최악의 경우를 생각하자면 나는 퇴직할 때 까지도 절대 내가 원하는 발령은 날 수 없을지도 모른다. 88년생 올 해 38살, 55세가 정년인 나의 직장은 내가 정년퇴직을 할 수 있다고 하더라도 15년 남짓한 시간이 남았다.

내가 열심히 한다고 해도 상황이 나이지진 않을거라는 생각을 한 뒤 부터는 나는 절대 월급만 받고 회사에 충성한다는 생각은 절대 하지 않았다. 어차피 평생을 다닐 수 있는것도 아니거니와 카미카제같은 소모품으로 나를 생각하는 기업에게 나 또한 절대 충성을 바칠 이유도 없기 때문이다.  회사는 내가 월급을 받는곳. 단지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라고 생각하니 마음은 아프지만 별 일이 아니었다. 

 

이번 발령은 가장 원거리 발령이고 그 마저 내가 들어갈 수 있는 숙소도 없다고 했다. 

그 이전 본점 발령도 타지 발령인터라 숙소 생활을 했었는데 그마저도 숙소에서 숙소로 옮겨야 하는 상황이라는 것만해도 기가 막힌데 숙소도 없어 내가 구해야 하니 눈앞이 캄캄했다.

또한 내가 다니는 회사의 경우 숙소도 원룸 형태가 아니면 안되고 회사에서 지원하는 금액 이내에 들어온다 하더라도 투룸은 안된다. 유배지 발령 받은 것도 서러운 일인데 인사부에 숙소 승인을 위해 죄인마냥 빌고 빌어야 되는 상황이 되고,승인을 받기까지도 얼마나 가슴을 조렸는지 모를 일이다.  내가 살인을 한 것도 아니고 물건을 훔친것도 아닌데 죄인마냥 작아지는 나를 지켜만 볼 수 밖에 없는 내 자신이 안쓰러웠다.

그리고 그러고나면 다음에 발령을 받는 직원들은 숙소가 있으니 숙소 걱정은 덜 할 수 있겠지만 내 개인으로는 참 억울한 일이다. 그렇게 애쓰고 고생했는데 아무것도 돌아오는 것 없이 언제 죽을지 모를 사형수마냥 나는 다음 발령이 나도 이렇게 울며 고생할 수밖에 없을테니 말이다.

유배지에서 숙소를 구하다보니 다른 기업보다도 조건이 까다롭고 직원복지가 잘 이루어지지 않던 우리 기업에 대해 공인중개사나 임대인들도 혀를 끌끌 찼다. 그것도 여직원을 저렇게나 멀리 발령을 보내면서 지원금 이내에만 조건이 맞으면 되지 무슨 투룸이 안되고 그런 식으로 구느냐며 그런식으로 발령을 낼 거면 숙소라도 있는 곳에 보내야 하고 다른 회사는 이렇게까지 하는 곳이 없다며 유배지 발령받은 죄인인 나를 불쌍한 눈으로 바라봐주었다.  그런 눈길이 위로가 된 것은 얼마나 내 처지가 안타깝게 된 것일까.

이런 처지가 되면 인사부의 두 얼굴이 보인다. 

다른 칼럼에서 소개하고 싶은 이야기인데 앞에서는 편 드는 척, 어지간히 생각해 주는 척 하던 인사부 담당자는 내가 유배지로 발령이 나자 얼굴이 180도 변해 그 모습이 참으로 재미있고 낯설고, 또한 내가 인사부에 대한 엄청난 저주를 퍼부을 수밖에 없었던 경험이 있어서다. 

씁쓸한 일이다. 

물론 회사가 모든 직원들의 편의와 사정을 봐 줄 순 없다고 하더라도 항상 본인의 고향에서만 일하는 직원들은 늘 그곳에만 머무르고 그렇지 못한 나와 같은 몇몇 직원들은 왜 늘 유배지로만 돌아다녀야 하는건지는 인사부는 설명할 수 있을까? 

숙소를 구하며 숙소에 대해 질문을 하던 내게 죄인 다루듯 쏘아 붙이며 말하는 그 직원의 말투에 어이가 없어 가만히 있으니 그가 '내 말에 대리님이 답을 못하지 않느냐'며  또 다시 쏘아붙이던 그 직원도 이런 질문에 과연 답할 수 있을까? 난 절대 그쪽처럼 쏘아붙이지 않았다.  아마 그렇지 못할 것이다. 다시 생각해 보니 적어도 난 같은 직원이라고 생각해 예의를 차렸는데 칼럼을 쓰며 그냥 그러지 말걸 그랬다 싶다[농담 반, 진담 반이다].

또한 이러한 경험으로 절대적으로 회사는 내 편이 아니라는 생각을 다시금 하게 되며 나는 그냥 월급만 받는 사람 정도로 생각을 하게 되니 실망을 하게 되더라도 더 이상은 그 실망이 내 속으 파고 들어오진 않았으면 한다. 그리고 나 또한 회사를 이용하면 될 일로, 그냥 서로 윈윈하는 방향으로 가 보는 것도 어떨까 마음을 다잡아 본다. 

이런 상황이 된 것은 어찌보면 운명이겠지만, 그것을 비극으로 만드느냐, 희극으로 만드느냐 하는 것은 오롯이 내 자신의 몫이니 또 다시 내 자신을 믿고 나아가 보려 한다.  

평범하디 평범한 직장인인 나.

모두가 그러하듯 세상에 태어난 건 모두에게 기적같은 일이며 나 또한 그 기적 중의 한 사람임을 잊지 않으려 한다.

회사가 나를 죄인 취급하고 유배지 발령을 보내며 필요 없는 사람 취급을 한다고 하더라도, 적어도 내 인생에서 나는 주인공이며 회사원인 내가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내는 곳이 회사인 것만은 맞지만 회사가 전부일 수도 없으며 또 전부가 되어서도 안된다. 내게도 회사를 다닐 수 있는 시간이 그렇게 길게 남지만은 않은 만큼 회사를 떠나서도 온전히 홀로 설 수 있는 내 자신을 기대한다. 

상황이 상황인지라 늘 마음이 여유로울 순 없겠지만 통영은 참 아름다운 도시 아닌가. 

아름다운 자연, 먹거리, 유명 소설가 박경리 선생님의 고향이기도 한 곳, 백석 시인의 로맨스가 함께 스쳐 지나간 곳 또한 이순신 장군님의 업적을 기리며 거북선이 위치해 있는 이순신공원 등등 볼거리와 역사유적 및 다양한 경험을 할 수 있는 곳이 통영이며 근무지 가까이 바다가 있어 작은 꽃게들이 근무지로 올라오는 색다른 경험[?]도 할 수 있는 곳이다.

나에게는 유배지인 곳, 그렇지만 나는 이 곳에서 소소한 행복을 만들어 가려 한다.

늘 직장이라는 곳은 힘들 수밖에 없는 곳이다.

돌아가신 할머니께서 내게 했던 말씀 중 '돈 나오는 곳은 사람 죽는 곳' 이라는 말씀이 있을 만큼 얼마나 월급을 받는다는 게 험난한 길일까. 물론 상대적으로 누구는 조금 더 편하고 누구는 조금 더 혜택을 받는다고 해도 혜택을 좀 더 받는 그 또한 속이 편할까? 아마 그에게 물어본다면 그도 내가 너무 편하고 좋다고 말하진 못할 것이다.

사람으로 힘들든, 일로 힘들든. 어떻게든 힘들 수밖에 없는 곳이 직장이라는 생각을 하면서도 늘 이러한 인사발령을 받게 될 때면 나도 모르게 내 자신이 초라해지는 건 그래도 나 또한 연약한 사람이기에 어쩔 수 없는 일인 것 같다.

밝은 성격상 밝게 웃어도 보고 큰 소리로 반갑게 인사하고 즐겁게 지내고 있지만 마음 한구석에 나는 패배자  혹은 실패자 가 쓰여 있을 수밖에 없는 내 마음은 이따금씩 많이 아프다. 

하지만 늘 주저앉아 울고 있을 수 만은 없다는 걸 알기에 오늘도 일어서서 힘을 내 본다.

그런데 다음 발령은, 나도 조금 혜택을 받고 싶다. 그래도 타지 많이 돌아다니지 않았는가. 

알 수 없는 인생이고 직장생활이지만, 꿈 꾸는데는 돈 들지 않으니 다시 한 번 꿈도 꾸어 본다.

세상 모든 간 쓸개를  집안에 빼 놓고 출근하여, 오늘도 열심히 달려나가는 세상 모든 직장인들을 진심으로 응원하며 글을 마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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