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은 나를 개새끼라 불렀다』

 

  나는 드라마나 영화를 좋아하지 않는다. 현실에서 살다가 잠시 영화관에 들어가 하나의 스토리를 끝내고 나면, 내가 살고 있는 이 삶에 대한 회의감을 느낄 때가 종종 있기 때문이다. 다만 쇼츠로 간간이 드라마의 조각들과 대사들을 보고 듣기는 하는데, 아래의 대사는 듣고 나서 몇 달 동안 내 생각을 잡아먹었다. 당시 그토록 강렬하게 내 마음을 표현하는 문장을 들어본 적이 없었고, 어디에서도 이런 조언을 들은 적이 없었기에 다시 기억을 되살려 본다.

 

 


  “어릴 때요. 38살 정도 먹으면 완벽한 어른이 될 줄 알았어요. 모든 일에 정답을 알고 옳은 결정만 하는 그런 어른이요. 그런데 38살이 되고 뭘 깨달았는지 아세요? 결정이 옳았다 해도 결과가 옳지 않을 수 있다는 것, 그런 것만 깨닫고 있어요.”

  “48살 정도 되면 어떻게 되는 줄 알아요? ... 이거 스포일러인데... 옳은 건 뭐고 틀린 건 뭘까. 나한테 옳다고 해서 다른 사람한테도 옳은 걸까. 나한테 틀리다고 해서 다른 사람한테도 틀린 걸까. 내가 옳은 방향으로 살고 있다고 자부한다 해도 한 가지는 기억하자. 나도 누군가에게 개새끼일 수 있다...”

  <tvN 드라마 검색어를 입력하세요 WWW’ 대사 중 발췌>

 

 

[사진제공: tvN 드라마 ‘검색어를 입력하세요 WWW’]
[사진제공: tvN 드라마 ‘검색어를 입력하세요 WWW’]

 


 

 

  쇼츠로 본 드라마라 제목도 소재도 기억나지 않아, 그 대사 몇 줄을 찾기 위해 배우 임수정의 필모그래피에서 기어코 찾아낸 작품이었다. 당시 나는 새로운 MZ 문화가 지배적인 회사에 들어가 신입으로 바쁜 업무를 처리하고 있었다. 그 회사는 주로 20대 중반에서 30대 초반의 직장인들이 중심이 된 마케팅 회사였고, 이전에 다니던 회사들과는 전혀 다른 사내 분위기에 나는 어디에도 끼지 못하고 있었다. 대화 자체에 문제가 있는 것은 아니었다. 20대 초반들과 농담을 주고받는 것도 재밌었고, 경쟁에 대한 스트레스도 없었다. 컴퓨터 전공자는 아니었지만 다양한 업무 툴 사용 경험이 있어서, 처음 접하는 툴들도 어렵지 않게 익혔다.

 

 

  모든 것이 순탄했으나, 나를 괴롭히는 유일한 것은 회사와 나의 가치관 차이였다. ‘모든 것을 데이터화 할 것이라는 목표를 가진 회사는 기록의 중요성을 강조했고, 나는 옆자리 동료와도 채팅으로 대화해야 했다. 많은 직원들이 헤드폰을 끼고 노래를 들으며 일하는 분위기라 목소리를 내서 부르는 것이 되려 어색했다. 점심을 같이 먹을 때도 진짜 대화를 나누기가 힘들었다. 적응 상태를 모니터링하기 위한 면담에서도 내 또래의 팀장과 나누는 대화는 전부 튕겨 나가는 듯했다. 야근을 하는 분위기도 아니어서 업무를 남아서 하는 것도 허락되지 않았다. 내가 익숙했던 방식과 모든 행동이 정반대였으니, 회사 입장에서 나를 미운 오리 새끼로 여기는 것도 당연했다.

 

 

  나는 주로 연상의 선배들에게 회사 문화를 배웠다. 첫 직장에 다닐 때는 토요일 출근도 있던 시절이었다. 금방 주5일제가 되었지만, 워커홀릭이었던 나는 주말에도 출근한 적이 많았고, 야근 수당 없이도 책임 있는 일을 완수하는 것이 당연했다. 저녁 회식도 업무의 일부라 배웠으며, 눈치가 빠르고 어른들에게 싹싹한 나는 부적응을 경험한 적이 한 번도 없었다. 학습 능력이 뛰어나고 자신감 있던 나는 40대에 접어들었음에도 새로운 분야의 업무에 도전하는 것이 어렵지 않을 것이라 생각했다. 그러나 몇 년을 쉬고 다시 찾은 직장에서 내가 시대의 흐름을 놓쳐버린 건 아닐까 걱정하기 시작했다. 과거의 회사 회장님들이 사막에서도 살아남을 일꾼이라 칭찬하던 내가, 40대가 되어 처음으로 자신이 불량품이 된 것은 아닌지 걱정하기 시작했다. 바로 그때, 앞의 드라마 대사를 들었다.

 

 

  배우 임수정과 권해효의 대사가 내 마음을 혼란스럽게 만들었다. 나는 인생의 바른 길을 가고 있다고 생각했지만 현실에서는 달랐다. 새로운 세대는 내 가치를 부정하고 자신들의 새로운 가치관을 내게 주입했다. 그 충격은 내 살아온 과거가 부정당하는 느낌이었다. 열정적인 20, 30대를 보내며 결과를 냈던 내가 이제 완전히 다른 모습으로 탈피하라는 요구를 받았다. 드라마 속 배우 권해효의 말처럼, 회사는 내가 옳다고 믿던 사고방식을 잘못되었다고 말하며, 나를 마치 개새끼라고 하는 듯했다. 짧은 대사였지만 내 안의 갈등에 불을 붙였다. 고민 끝에 결국 사표를 내고 회사를 나왔다.

 

 

  일하는 기간에도, 떠나던 때에도 나는 많이 울었다. 무엇인가를 중도에 그만둔 것은 처음이었다. 노력했지만 결국 조율하지 못했다. 억울함이 처음 느낀 감정이었다. 그 감정을 담아 쓴 첫 칼럼이 “MZ세대와 리더십이었고, 덕분에 나는 칼럼니스트로 활동하게 되었다.

 

 

  지금 나는 다시 예전의 궤도를 찾으려 노력 중이지만 아직도 덜그럭거린다. 빠르게 변하는 사회에서 내 위치와 형태를 다시 다듬고 있다. 몇 개월 전의 경험을 돌아보면 억울하기보다는 그런 일도 있었지하며 받아들이게 된다. 나이가 든다는 것은 무언가를 놓아버리고 세계를 다시 확장해 나가는 과정 아닐까. 나이가 들면서 보이지 않던 것들이 점점 더 보인다. 그래서 30대의 오만을 경계해야 40대 이후의 삶을 더 현명하게 꾸릴 수 있다.

 

 

  지금 나는 나를 다른 방향으로 나아가게 만든 그 회사에 감사한다. 한갓 인간이기에 옳은 일만 반복하며 살 수 없다는 것을 안다. 그러나 항상 균형을 잡고 나를 객관적으로 돌아보는 시선만큼은 죽을 때까지 유지하고 싶은 것은 나의 욕심일까.

 

 

  오늘도 이런 잔잔한 바람을 안고 40대의 하루를 신나게 시작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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