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중년 기자단 이야기 시리즈 1
김영통 기자의 ‘제주살이’ 그리고 ‘제주올레’를 통해 인생을 돌아보다 1
오롯이 혼자만의 ‘제주살이’ 나의 버킷리스트 1호가 이루어지는 순간‧‧‧
강원도 오지에서 시작한 첫 학교생활 “그 시절 힘들었지만, 열심히 최선을 다해서 살았다”
제주올레를 만나고 ‘무념무상’ 오롯이 걷는 데만 집중. 그럴수록 온갖 상념이 나의 마음을 씁쓸하고 애잔하게 만들어‧‧‧
인생은 노력해서 땀 흘린 대가만 딱, 그만큼만 나에게 보상, 약간의 행운은 ‘덤’일 뿐‧‧‧
걷는 내내 바라본 제주의 아름다운 풍경은 원래 내가 찾고자 한 ‘나의 삶’으로 투영‧‧‧
“비와 바람에 부딪힌 눈물이 조각되어 파도 소리와 함께 내 귓불을 때렸다. ‘윙윙’인지 ‘엉엉’인지 바람 소리에 묻혀 알 수 없는 소리가 내 가슴을 도려내고 있었다.”
‘제주살이’ 시동을 걸다.
2021년 7월, 30년 이상을 대학에서 교육에 봉직하면서 재직기간 각종 포상은 물론 교육부 장관상을 받는 영예까지, 조금 이른 나이지만 감사패를 받고 명예롭게 퇴직한 것은 참으로 감사하고 행복한 결실이다.
그해 10월 난 홀로 ‘제주살이’를 결심했다. 오랜 직장생활을 정리하고 오롯이 나만을 위한 ‘보상’과 ‘사색의 시간’을 갖고 싶었다. 나의 버킷리스트 1호가 마침내 이루어지는 순간이었다.
마침, 제주에는 ‘제12회 2021 올레 걷기 축제’가 진행되고 있었다. ‘올레’란 제주 사투리로 아주 좁은 골목길을 뜻한다. 문(門)을 뜻하는 순우리말 ‘오래’가 제주에서는 ‘올레’로 알려져 있다. 또한 제주올레는 발음상 “제주에 올레? 제주에 오겠니?”라는 이중적 의미를 포함하고 있다.
‘제주올레’는 언론인 서명숙 선생님이 산티아고 순례길에서 영감을 얻어, 제주도 전역에 만든 일종의 트레킹 코스다. 제주도의 걷기 좋은 길을 선정하여 제1코스(시흥-광치기, 제주올레에서 가장 먼저 열린 길. 오름과 바다가 이어지는 '오름-바당 올레')를 시작으로 제주에 24개 코스가 있으며, 우도, 가파도, 추자도를 포함하여 총 27개 코스가 생겼다. 총연장 약 437km의 코스를 완주하려면 보통 3주 이상이 걸리며 모두 완주해야 ‘메달과 증서’를 받을 수 있다. 제주올레를 걷는 동안 둘레길, 비렁길, 황톳길, 바닷길 등 제주의 가장 아름다운 길을 모두 만날 수 있다.
*제주올레 : 제주도 437km 27코스를 걸어서 여행하는 길
사실 제주 오기 전에는 ‘걷는다’ 것에 관한 관심조차 없었다. 먼 길을 온종일 ‘왜’ 그리고 ‘무엇’ 때문에 걸어야 하는지. 힘들게 '걷는 자의 심리'를 이해할 수 없었다. 서울에서 부산까지의 거리가 대충 400km로 알려져 있는데, “올레 전체 코스의 길이가 437km? 이 길을 완주한다고? 아니 완주자가 벌써 1만 명을 돌파했다고?”
‘제주올레’를 만나다.
2021년 10월 ‘제주살이’를 시작할 무렵 서귀포 시내와 거리는 제주 올레(걷기) 축제 분위기로 도시가 들썩이고 있었다. 거리는 온통 자원봉사자들의 깃발과 곳곳의 ‘올레꾼’들로 넘쳐나고 있었다.
우연한 기회에 막연한 호기심으로 올레길 중 가장 아름답다고 정평이 나 있는 ‘올레 7코스’를 걷기로 하였다. 나의 제주살이 숙소가 올레 7코스를 관통하는 서귀포시 '호근리'에 위치한 것도 한몫하였다.
7코스는 제주올레 여행자 센터를 시작으로 칠십리공원, 천지연폭포, 삼매봉, 외돌개 해안, 속골, 수봉로 해안 길, 법환포구, 강정마을, 월평포구, 월평마을로 이어지는 해안 올레다. 빼어난 절경으로 아름다운 외돌개와 올레꾼들이 가장 사랑하고 아끼는 자연생태 길인 ‘수봉로’를 만날 수 있다. 수봉로는 올레지기 김수봉 님이 염소가 다니던 길에 직접 삽과 곡괭이만으로 계단과 길을 만들어서 사람이 걸어 다닐 수 있도록 한 길이다. 7코스 총거리와 시간은 17.6Km며 약 5~6시간이 소요된다.
올레 7코스 시작에 마주한 서귀포의 바다와 파도는 눈이 부시도록 아름다웠다. 힘차게 부서지는 파도의 물보라는 마치 나의 젊은 시절처럼 화려했고 거침이 없었다.
서울 토박이가 아무 연고도 없는 오지의 강원도 원주 땅(당시 영동고속도로는 2차선)에서 시작한 첫 직장생활은 ‘무모함과 모험’ 그 자체이었다. 수많은 시행착오를 거치면서 그렇게 내 젊음을 지방의 소도시 원주에서 불태웠다. 돌이켜보면 “그 시절 힘들었지만, 열심히 최선을 다해서 살았다”라고 감히 자부한다.
삼매봉 정상에서 바라본 안개 낀 서귀포 시내의 모습은 신비하고 영롱했다. 그곳에서 한참 동안 ‘멍’ 때리는 시간을 가졌다. 삼매봉에서 내려와 칠립리 공원에 새겨진 조각에서 김용길 시인을 마주하고 7코스의 정점 ‘외돌개’의 웅장함을 만날 즈음 내 기분은 최고조가 되었다.
서귀포 인연(因緣) / 김용길
인연 깊은 땅
서귀포로 오라
해수처럼 흘러와서는
머리 풀고 누워보아라
베갯머리 적시는
물결소리 들어보아라
밤새 설레이는 잠 속
가슴앓이 섬 하나
품에 안은들
저 바다가 어쩌겠느냐
여명(黎明)의 나래를 치는 새들이 운다
인연의 푸른 친구여
삶이란 게
들고나는 물살 같이
생애의 한 쪽
얽어지는 정(情)
풀어내며 살 일이러니...
그것도 잠시,
월평마을로 이어지는 법환포구부터 하늘이 심상치 않았다. 제주의 날씨는 변화무쌍하다고 귀에 못이 박이도록 들었지만, 현실을 마주한 적이 없기에 당황스러웠다. 제주 사람들은 이곳 법환포구를 ‘태풍의 시작 길’, ‘바람과 비의 시작 길’이라고 한다.
가늘게 시작한 비가 점차 굵어지기 시작하면서, 순간 발걸음이 꼬이기 시작했다. 순식간이었다. 비와 바람에 폭풍까지 몰아치기 시작한다.
“어떻게 해야 하나?”라는 생각에 꺼내든 우산은 비바람과 함께 순식간에 시야에서 사라졌다. 함께한 일행은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비옷으로 갈아입기 시작한다. 걷기를 포기하기는커녕 더욱 가열차게 걷는다. 솔직히 이 상황이 몹시 난감했지만, 일행과 함께 호흡을 맞추어 걷는 것이 지금으로써는 최선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무념무상’ 오롯이 걷는 데만 집중했다. 아니 집중하려 했다. 그럴수록 온갖 상념이 나의 마음을 씁쓸하고 애잔하게 만들었다.
‘회상’, ‘후회’, ‘미련’, ‘엄마’, ‘인연’, 속세의 형편없는 단어들만 귓가에 맴돈다. 지난 30년 명예롭게 은퇴한 자신감은 온데간데없고 자책감만이 가슴에 솟구쳐 올랐다. 걷는 내내 가슴이 먹먹해져 견딜 수가 없었다.
비와 바람에 부딪힌 눈물이 조각되어 파도 소리와 함께 내 귓불을 때렸다. ‘윙윙’인지 ‘엉엉’인지 바람 소리에 묻혀 알 수 없는 소리가 내 가슴을 도려내고 있었다.
‘올레’를 통해 인생을 마주하다.
돌이켜보면, 인생은 올레길의 이정표처럼 내가 원하는 방향으로만 흘러가지 않았다. 노력해서 땀 흘린 대가만 딱, 그만큼만 나에게 보상해 주었다. 약간의 행운은 ‘덤’이었을 뿐이다.
7코스의 종착역인 월평포구가 다가오자 '신의 장난'처럼 빗줄기가 가늘어지고 있었다. 여행자센터를 출발하여 월평마을까지 쉬지 않고 걸었다. 내 생애 첫 오랜 걸음이다. 완주했다!
그 길에서 산티야고 순례가 목표인 스물다섯의 젊은 여대생을 보았고, 중년의 노신사와 점심도 함께 했다. 부부, 친구, 성직자 우리는 살아온 길도 사는 곳도 다르지만, 목표는 7코스 완주이었고 모두가 그 기쁨을 누렸다.
오전 9시에 출발해 오후 4시까지 7시간 동안 변화무쌍한 날씨를 겪으며 ‘극기’를 넘어 ‘전투’처럼 걷고 또 걸으며 긴 시간 동안 오롯이 인생을 돌이켜 보았다.
살다 보면 그런 날이 온다. 가던 길을 그냥 가기에는 왠지 억울한 순간, “이렇게 살 수도, 이렇게 죽을 수도 있구나”라는 생각으로 속수무책으로 무너져 내리는 가슴을 쓸어 담은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이.대.로.는.안.되.겠.다.싶.었.다. 나.는.그.곳.에.서.벗.어.났.다.
그리고 자유를 만끽한다.
"내가 견디어온 30년 학교생활 보다 올레 7코스 7시간이 더 길게 느껴졌던 건 왜일까..."
온갖 상념에 젖은 시간이었지만 나의 의식은 점점 또렷해졌다. 내가 살아보고 싶었던 수많은 선택지가 떠오른다. 걷는 내내 바라본 제주의 아름다운 풍경은 원래 내가 찾고자 한 ‘나의 삶’으로 투영되었다.
느리게 숨 쉬고 싶을 때,
짧지만 짜릿한 일탈을 꿈꿀 때,
길 위의 자유,
그 불온한 냄새가 그리워질 때, 나는 걷기로 했다.
내일은 어떤 코스를 걸을까, 난 고민에 빠진다.
∼ To be continued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