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프리카 나미브사막 편

아프리카 여행

자유를 누리고 있을 때는 그 자유로움에 소중함을 모른다.

누리고 있던 자유로움을 잃어버리면 비로 서

자유로움이 얼마나 소중한가를 알게 된다.

나의 배낭여행이 그 소중한 자유를잃었다

언재 든 나의 여건만 되면 떠날 수 있다고 생각했던 여행이었다.

그러나 이제는 나의 개인적 문제 가아니다

코로나19라는 질병에

나라 간의 문이 닫히고 발이 묶였다.

3년 가까운 시간 동안 우리는 코로나19에게 일상을 빼앗겼고

수많은 인명피해도 발생했다자유로움을 빼았겼다.

개발이라는 미명 하에 인간들의 무분별함이 지구의 환경을 파괴하였다. 지구는 병들었고 북극의 빙하는 녹아내리고 세계 곳곳에 홍수와 가뭄과 산불로 몸살을 앓고 있는 지경에 이르렀다.

거기다가 한 인간의 욕심이 전쟁이라는 재앙까지 불러들였다.

수많은 생명을 앗아갔고 세계 경재는 크게 요동치며 물가는 고공행진을 하고 무참한 전쟁은 지금도 진행중이다.

나만 살다가 가는 지구가 아니다.

환경보호라는 말은 누구나 입버릇처럼 말하며 알고 있다.

우리의 후 세대에게 넘겨주어야 하는 지구이기에 내 집을 가꾸듯이

환경을 가꾸고 보호해야 한다.

지구상에서 개발이 가장 뒤처진 아프리카 대륙이다.

따라서 환경오염이 가장 적은 지역이다

오늘의 여행지는 바로 아프리카로 추억여행을 따나보려한다.

201282달간의 아프리카 여행을 계획하고 일정을 짜기 시작했다.

돌아보니 벌서 10년이 지난 시간이 되었다.

내 삶에서 가장 젊은 날 멀고 힘든 곳부터 여행하자는 생각으로 아프리카를 선택했다.

남아공 . 나미비아. 보츠와나. 짐바브웨. 잠비아. 탄자니아. 케냐. 이렇게 7개국을 두달여를  여행일정으로 잡았다

잠비아와 탄자니아 사이에 끼어있는 말라위 라는 작은 나라가 있다

말라위를 가려고 비자 신청 했으나거 절당했다.

여기서 말라위 비자 이야기를 조금 해야겠다.

아프리카 모든 나라는 국경을 넘을 때 현장에서 비자를 받아서 들어갈 수가 있었다

그러나 말라위만은 국경 부조리가 심해서 국경비자 발부를 모두

금지했고 대사관을 통해서만이 비자를 받을 수 있게 되어있었다

그래서 한국에서 출발하기 전 비자를 받으려고 말라위 대사관에다

비자 신청을 했는데 거절되었다.

거절 이유가 우리의 상식으로는 이해할 수 없는 이유이다

여행을 딸아이와 둘이 가는데

여자들 둘이서 왜 자기나라로 여행을 오냐는 것이었다.

이유는 여자 둘이라는 이유로 비자가 거절되었다

말라위는 아랍권 나라라 남자 없이 여자 둘이 여행하는 것을 허락하지 않았다.

말라위 호수를 보고싶어 가고자 하였으나

그런 이유로 말라위을 가지못하였고 잠비아에서 운행시간이 30시간이 넘는 버스를 타고 탄자니아로 갈 수밖에 없었다..( 지금 생각해도 힘들고 재미있다.)

 

 

남아공에서 나미비아 비자를 받아 트럭 투어 신청을하였다

트럭을 타고 나미비아의 광활한 나미브사막을 간다.

트럭에는 가아드겸 트럭 운전자 흑인 아멘과

20일간 우리의 식사를 담당할 요리사 백인 데이빗 이렇게 두사람이

우리들의 인솔자이다.

독일. 스위스. 이탈리아. 영국. 남아공. 아르헨티나. 케나다. 한국 이렇게 각국의 여행자 14명이 한 팀이되어 출발했다.

트럭투어는 광활한 나미브사막 구석구석 유명관광지를 들르며 야영지에서 탠트치고 숙박을하며 여행한다.

중간중간 지나게되는 도시에서는 마트에 들러 14명이 먹을 식재료 장 을보고

물 과 땔감 장작도 사며 필요한 각자의 용품도 구입한다.

달리다가 적당한 곳에서 요리사 데이빗이 준비해주는 음식을 먹는다.

설거지는 각자 자기 것은 자기가 하는데 물이 귀한 관계로

설거지통은 단 두 개다

세제 푼 물 한 통과 깨끗한 물 한 통이다.

세제 물에 접시를 닦아서 깨끗한 물에 한번 행구면 끝이다.

집 같으면 절대로 그 접시에 음식을 담아 먹지 않겠지먄

그곳에서는 선택의 여지가 없다.

그렇게 해도 배탈 한번 나지않고 잘 다녔으니 문제는 없었다.

식사 준비는 두 명씩 조를 짜서 데이빗을 도왔다.

내가 식사 당번 때의 일이다 채소를 다듬고 썰어서 준비할 때

나의 칼솜씨에 각국의 여행자들이 둘러서서 역시 소림사의 후예라며 엄지손가락을 치켜 세운다

60살된 한국의 주부라면 채소다듬고 채 써는 일은 누구나 익숙하게 하는 일인데 이들의 눈에는 신기했나보다.

우리가 백인들을 나라별로 구별하지 못하듯이

이들도 아시아인들을 구별하지 못한다.

아시아인 이나까 나를 중국인으로 생각한 모양이다.

이렇게 우리는 트럭에서 먹고 자고 달리며 20일간을 여행했다.

 

나미비아의 나미브사막은 붉은 사막이다.

붉은모래가 밀가루처럼 고와 바람이 불면 모래가 날린다.

자연의 신비가 그대로 화석처럼 남아있는

데드블레이 라고 불리는 죽은 오아시스.가 있다.

이곳에는 죽은 지 600~700년이나 되는 나무가 서 있다.

나무가 있는 것을 보면 물이 있었나 보다. 물 이 말라 죽은 지 700년 이 되었어도 건조한 기후 탓에 나무가 아직 썩지 않고 화석처럼 되어있다.

사구 듄45에 오른다 보기에는 별로 높지 않아 만만히 보고 오르기 시작하지만 한 걸음 나가면 두 걸음 미끄러지는 밀가루같이 고은 모래언덕을 오르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세계각국에서 모여든 여행자들이 이곳 듄45에 올라 일출을 보려고

애쓰며 오르고 있다. 이곳 현지인들은 신발도 부실한 슬리퍼를 신고 사분사분 잘도 올라간다.

해 뜰 때 듄 45에 올라 바라보는 나미브 붉은 사막은 장관이었다.

고생하고 올라온 보람은 있었다.

아 아름다운 장관을 카메라에 담아낼 수 없는 것이 아쉽다.

사진속의 내모습은 아프리카 여행자의 모습이 아니고 북극어느 지역을 여행하는자의 모습이다. 밤이 너무 추워 새벽에 올라간 듄45에서의 사진이 저 복장이다.

한국에서 삼복더위 중인 86일에 출발했는데 이곳 나미비아는 겨울이라 낮에는 덥고 밤에는 텐트에서 오리털 침낭을 머리까지 써도 추워서 잠이 깨인다.

여름의 나미브사막은 섭씨 50도씩 기온이 오른단다.

그래서 여름에는 사막여행은 할 수 없어 대부분 겨울에 사막여행을 한다.

 

에토샤 국립공원의 동물들은 우리가 TV에서 보던 동물의 왕국 그대로 내 눈앞에 있었다.

에토샤 국립공원 내에 있는 야영장에서 맞는 밤은 동물의 왕국에서는  들려주지 않는 약육강식의 현장이 가까이서 들려온다.

동물들의 비명소리가 멀지 않은  탠트 가까운 곳에서 들린다.

 

붉은 여전사라고 불리는 힘바부족이다.

유목민이었던 이들은 지금도 전통방식 그대로 나미브사막 여러곳에 정착하여 살고 있다

힘바부족 마을을 찾은 우리는 식용유와 밀가루와 오랜지등 그들의

먹거리들을 들고 갔다.

그들은 우리를 환영한다. 어린 아이들은 우리들이 들고있는 핸드폰에 관심이 많다. 지신을 찍으라로고 포즈를 취하고는 달려와서

사진찍힌 자신을 보여달라며 눈을 반짝인다.

순수한 눈빛이 참 좋았다.

내가 이곳을 다녀온지 10년이 지난 지금 이들은 여행자들이오면

손수만든 팔찌 목걸이 등을 펼처놓고 물건을 판다고 들었다.

부디 너무 세속에 물들지않고 그들의 순수함이 그대로 있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이곳 아프리카에서 만났던 부족은 나미비아 힘바부족과 탄자니아 에 마사이족과 보츠와나의 썬족 이라 불리는 우리가 알고있는 부시맨 족을 만났다.

 

10년이 지난 지금 이들의 삶이 어떻게 변하였을지 궁금하다

기후변화로 인해 아프리카에 극심한 가뭄으로

식물이 말라 죽고 동물이 죽어가고 있다고 한다

 

아프리카를 여행한 사람으로서 고통받는 아프리카를 지켜 볼 수 밖에 없는 현실이 가슴아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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