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 조각예술의 극치 지광국사현묘탑비(국보 59호) 보존 시급

                                        법천사지 전경. 유적지 발굴이 상당히 진행되어 있다.(사진촬영 : 서홍렬 기자)
                                        법천사지 전경. 유적지 발굴이 상당히 진행되어 있다.(사진촬영 : 서홍렬 기자)

 폭염이 기승을 부리던 7월말 원주시 부론면 법천리 소재 법천사지를 찾았다. 한때 문화재지킴이 활동을 하면서 학생들과 인솔교사 3명과 함께 이곳을 탐방하고 주변청소를 했던 시절을 떠올리며 수년 만에 어떻게 변모했을까 하는 기대감에 다시 탐방을 하였다. 현지에 도착했을 때 변화된 점은 전에는 없었던 주차장과 화장실 시설이 갖추어졌다는 것이다. 풀이 우거졌던 들판에 법천사지 유적지 발굴이 상당히 진행되어 있었다. 사료에 따르면 법천사지는 고려중기 법상종 사찰이었으며 고려 문종 때 고승 지광국사가 젊은 시절 승려로 입문한 곳이자 말년에 입적한 곳이다. 법천사는 통일신라와 고려시대 무신정권 이전까지 매우 번창한 사찰이었다. 10세기에서 12세기까지 관옹, 지광국사, 정현, 덕겸, 관오, 각관 등 유명한 승려들이 머물면서 수행한 곳이다.

 조선초기에는 학자 유방선이 이곳 사찰에 머물면서 제자를 가르쳤으며 제자들 중에는 한명회, 서거정, 권람 등이 있었다. 허균은 이곳을 방문한 후 기록서 ‘유원주법천사지’를 남겼는데 내용에 따르면 법천사는 임진왜란 때 불타서 사라졌다고 한다.    

                                             법천사지에 남아있는 석재들 역시 소중한 유물이다.(사진촬영 : 서홍렬 기자)
                                             법천사지에 남아있는 석재들 역시 소중한 유물이다.(사진촬영 : 서홍렬 기자)

 법천사는 고려시대의 뛰어난 석조미술 양식을 보여주고 있는데 지광국사탑비, 지광국사탑, 당간지주, 일부 석탑재가 남아있다.

 원주 법천사지 지광국사현묘탑비 안내사료에 따르면 지광국사현묘탑비는 고려 신종 2년(1085년)에 지광국사의 삶과 공적을 기리고자 세운 것이다. 지광국사는 원주에서 탄생해서 8살에 출가하여 21세에 승과에 급제하였다. 승과에 급제한 이후로 고려 성종, 목종, 현종, 덕종, 정종, 문종 때까지 왕사와 국사로서 최고의 승려로 활약하였으며 자주 왕실에 초청되어 임금과 교류를 하였다. 특히 문종은 지광국사를 스승으로 삼았다. 지광국사는 문종 24년(1070년)에 87세의 나이로 법천사에서 입적하였다. 임금의 시호로 미루어보면 비교적 안정된 왕권하에서 승려의 삶을 살았다고 볼 수 있다.

                                                                법천사지 지광국사현묘탑비(사진촬영 : 서홍렬 기자)
                                                                법천사지 지광국사현묘탑비(사진촬영 : 서홍렬 기자)

 현재 법천사지에서 볼 수 있는 지광국사현묘탑비는 거북 모양의 받침돌 위에 몸돌을 세우고 왕관 모양의 머릿돌을 올린 형태로 전체 높이는 4.55m이다. 받침돌에 있는 거북의 얼굴은 용의 얼굴과 비슷하며, 등껍질은 사각형 모양을 구성하고 있다. 각각의 등껍질에는 왕(王)자를 새겼다.

                     지광국사현묘탑비 몸돌 옆면에 조각된 용은 매우 사실적으로 표현되었다.(사진촬영 : 서홍렬 기자)
                     지광국사현묘탑비 몸돌 옆면에 조각된 용은 매우 사실적으로 표현되었다.(사진촬영 : 서홍렬 기자)

 탑비에 섬세하고 화려하게 조각된 연꽃, 구름, 용 등은 고려시대 조각예술의 극치를 보여주고 있다. 특히 몸돌 양 옆면에 구름과 조화를 이루어 조각된 두 마리의 용은 매우 정교하면서 살아있는 것처럼 사실적이다. 

 2012년 어느 주말 문화재지킴이 활동으로 학생들, 교사들과 함께 이곳을 탐방하였을 때 더운 날 지광국사현묘탑비에서 조심스럽게 벌초작업을 하는 분을 만났다. 그가 문화재청 소속 관리원인줄 알았는데, 자신은 회사원이며 경기도 이천에 거주한다고 하였다. 자신은 주말마다 이곳을 찾아 지광국사현묘탑비를 돌보고 있다고 하였다. 진정한 문화재지킴이 활동을 하는 분이었다.

                           지광국사현묘탑비 좌측 하단에 부식화가 상당히 진행되어 있다.(사진촬영 : 서홍렬 기자)
                           지광국사현묘탑비 좌측 하단에 부식화가 상당히 진행되어 있다.(사진촬영 : 서홍렬 기자)

 지광국사현묘탑비를 살펴본 바 석재는 지질학적으로 진흙이 굳어져 만들어진 흑색 셰일 계통의 점판암으로 오랜 세월이 흘러서 부식화가 진행되고 있었다. 특히 탑비 왼편 아래쪽에는 부식화가 상당히 진행되어 안타까운 상태였다. 거북 모양의 받침돌 역시 좌우 방향을 살펴보면 태양의 방향에 따라 거북등의 석재 색깔이 달라졌음을 볼 수 있었다. 탑비 왼편 아래쪽 부식화 진행은 태양의 방향에 따라 북향은 탑비에 접촉된 눈·빗물의 증발속도가 남향보다 느리기 때문에 부식화가 빠르게 진행된 결과일 것이다. 

 당시 그 회사원은 학생들에게 지광국사현묘탑비에 대해 해박한 전문지식으로 자세히 설명을 해주었다. “소중한 국보인 탑비의 부식화가 더 이상 진행되지 않으려면 하루빨리 지붕 시설이라도 갖추어서 눈·빗물과 태양으로부터 탑비를 보호하는 조치를 취해야 할 것이다.“라고 의견을 나누었다. 문화재 지킴이 활동을 하는 그 회사원은 대전 소재 문화재청에 여러 번 연락을 하여 지광국사현묘탑비의 실상을 알리고 보호강화 대책을 건의하였다고 한다.

 전에는 탑비 주변에 감시카메라도 없었는데 이번 기자의 탐방 때는 다행히 감시카메라가 설치되어 있음을 볼 수 있었다. 그러나 지광국사현묘탑비는 여전히 눈·비·바람에 노출되어 있다. 비문 석재의 갈라진 틈으로 빗물이 스며들 것이고, 산성비의 영향과 겨울철에는 얼고 녹는 것을 반복하면서 부식화가 더 빠르게 진행될 것이다. 마치 눈·비·바람에 노출된 오래된 타일표면이 부식되어 조각으로 떨어져 나오는 원리와 같은 것이다. 현재 문화재청에서 어떤 대책을 갖고 있는지 파악은 못했지만, 보존과학적인 기법을 동원하여 하루빨리 탑비를 보존해야할 상황에 처해있는 것은 분명하다.

                                 지광국사현묘탑비가 위치한 곳. 소나무숲이 매우 아름답다.(사진촬영 : 서홍렬 기자)
                                 지광국사현묘탑비가 위치한 곳. 소나무숲이 매우 아름답다.(사진촬영 : 서홍렬 기자)

 충주시 중원고구려비 전시관을 방문해보면 탑비를 어떻게 보존해야 하는지 해답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과거 경주지역 신라문화권에 비해서 멸망한 왕조인 백제의 한성·부여·공주·익산·왕궁지역에 산재한 백제문화권의 유적지와 유물의 보존처리가 매우 저조했으며 거의 방치한 상태였다. 현재는 백제문화권에 대한 지대한 관심 덕택에 부여지역은 백제문화단지 조성과 정림사지탑 역사관이 건립되어 각종 건축물 모형도와 영상자료를 확보해 전시하고 있다. 공주지역은 국립공주박물관 이전과 무령왕릉 일원을 재정비하여 백제문화 관련 시설이 새롭게 조성되어 있다. 백제문화권은 과거에 비하면 괄목할만한 문화재 복원과 보존의 성장을 가져왔으며, 아울러 백제문화권의 대규모 관광자원화가 이루어져 수많은 관광객들을 끌어 모으고 있다. 

 익산군 미륵사지 역시 현지에 가보면 거대한 규모의 사찰은 이미 소실되어 사라졌으나 익산 미륵사지 복원 석탑과 발굴된 매장문화재 전시관을 갖춘 덕택으로 수많은 관광객들이 모여들고 있음을 볼 수 있다. 또한 그곳 문화재 전시관의 많은 유물, 사찰모형도, 영상자료를 통하여 관광객들은 찬란한 백제문화의 진수를 머릿속에 새기게 되는 시간을 갖게 된다.

 몽고침입 때 사라진 신라 황룡사지에도 현실적으로 황룡사 목탑을 복원한 것은 아니지만 황룡사 역사관 건립으로 찬란했던 신라시대의 역사적 사실들을 널리 알리고 있으며 관광자원화로 수많은 관광객들을 유치하고 있다.

 법천사지 발굴현장에 비치된 알림판을 통해 매장문화재 보호 및 조사에 관한 법률 제11조에 따라 매장문화재 발굴조사가 이루어지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발굴조사 기간은 2021년 3월 30일(화)에서 2021년 9월 4일(토)까지이며, 조사기관은 (재)강원고고문화연구원에서 진행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폭염 속 뙤약볕 발굴현장에서 측량기사가 스캐닝 작업을 하고 있다.(사진촬영 : 서홍렬 기자)
                            폭염 속 뙤약볕 발굴현장에서 측량기사가 스캐닝 작업을 하고 있다.(사진촬영 : 서홍렬 기자)

 그늘조차 없는 한여름 폭염 뙤약볕 발굴현장에서 두 사람이 장비를 다루면서 뭔가 작업을 하고 있었다. 기자의 작업내용 문의에 자신들은 문화재청 용역 측량회사 직원이며, 훗날 사찰 복원자료 확보를 위하여 발굴현장 스캐닝 작업을 진행하는 것이라고 하였다. 

 원주지역 대표적인 폐사지 법천사지·거돈사지·흥법사지는 국민들의 성숙하고 꾸준한 관심을 받을 가치가 있는 문화재이며, 발굴과정을 거쳐서 유적지와 유물보존에 힘쓰고 전시관 건립 등을 통하여 경주의 신라문화권과 공주·부여·익산의 백제문화권에 필적할 역사관광 자원화가 이루어지길 빌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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