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호남 피플 6 : 김근재 전 목포시의원
“서러운 마음, 먼저 알아보는 사람이고 싶습니다.”
– 김근재 전 목포시의원 인터뷰
목포는 오래된 골목과 묵은 민원이 공존하는 도시다. 신도심과 구도심, 항구와 농촌이 공존하는 복합적 지역이며, 그만큼 다양한 계층의 삶이 얽혀 있는 곳이다.
그중에서도 옥암동은교육환경개선, 공동주택환경개선(아파트 등) 삼향동은 삼향천 관리 및 개발문제, 상동과 삼향동은 유난히 ‘복지의 언어’가 절실한 곳이었다. 특히 상동과 삼향동은 저소득층, 장애인, 고령 인구가 집중되어 있는 만큼, 일상에서 마주하는 문제들은 단순한 민원이라기보다 한 사람의 삶의 조건이 걸린 사안들이었다.
그런 지역에서 “시의원이기 전에 이웃이고 싶었다”고 말하는 정치인이 있다.
‘김근재 전 목포시의원’ 그는 이제 공식 직함은 내려놓았지만, 지역 사람들 사이에서는 여전히 ‘우리 편’, ‘우리 동네 사람’으로 남아 있다.
7년 전, 아직 청년이던 그가 지방의회에 입성했던 이유, 그리고 그 시간 속에서 느꼈던 보람과 한계, 앞으로의 역할에 대해 진솔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안녕하세요, 여전히 여러분의 이웃입니다.
Q. 먼저 독자분들께 인사 부탁드립니다.
네, 안녕하세요. “여전한 여러분의 이웃, 전 목포시의원 김근재입니다.”공식적으로는 ‘전 시의원’이지만, 저는 그 직함보다 ‘이웃’이라는 말이 더 좋습니다." 시의원은 결국 골목에서 시민들과 부대끼는 자리니까요. 지금도 지역에서 다양한 활동을 하며, 주민들과 소통하고 있습니다. 정치의 자리에서 물러났다고 해서 ‘정치를 완전히 떠났다’고 생각하진 않습니다.
청년 시절, 약자의 삶을 가까이서 보고 듣고 싶었습니다.
Q. 당시 출마를 결심하게 된 계기는 무엇이었나요?
당시만 해도 풋풋한 청년 정치인이었습니다. 목포 상동과 삼향동은 모두 복지적 개입이 절실한 지역이었습니다. 상동은 장애인과 저소득층이 밀집한 지역이고, 삼향동은 도농복합형 지역으로 고령 인구가 많죠 주민 한 사람 한 사람의 사정이 복잡하고 민원도 끊이질 않지만, 그만큼 ‘정치’라는 말이 너무 멀게 느껴지기도 하는 곳이었습니다. 그래서 생각했습니다.
'이럴 땐 행정 경험 많은 엘리트보다, 사정을 잘 아는 동네 사람이 더 낫겠다’ 제가 그 사람이 되고 싶었습니다. 그리고 정말 그렇게 시작했습니다.
한 사람의 응어리를 함께 풀어낼 수 있었을 때, 그게 정치였습니다.
Q. 의정 활동 중 가장 기억에 남는 순간이 있다면요?
가장 보람찼던 순간은 특정한 ‘성과’보다는, 오래된 '민원'이 해결됐을 때, 그리고 주민들과 함께 그 길을 걸어왔다는 감각을 느낄 때였습니다. 어떤 분은 수년간 풀리지 않던 주거 문제로 억울하고 분한 마음을 갖고 계셨어요. 제가 함께 문제를 짚고 해결하며 그분이 “이제는 살 것 같다”고 하시더군요 그런 순간이 저에게는 ‘이것이 정치의 본질’이다 느껴졌습니다.
Q. 반대로 가장 어려웠던 순간은 무엇이었나요?
정치적 이상과 현실의 괴리를 마주했던 순간들입니다. 지방의회라고 해도 정당 공천제가 있다 보니, 정당 입장과 지역 민심 사이에서 균형을 잡기가 어려울 때가 많습니다.
게다가 당시에는 특정 정당이 압도적인 의석을 차지하지 않은 상태였기 때문에 이른바 ‘세력 정치’ 속에서 사안 하나를 놓고도 힘겨루기가 벌어지곤 했습니다. 시민들에게 꼭 필요한 정책이지만, 당내 정서와 맞지 않으면 추진하기 어려웠던 때도 있었죠. 그럴 때는 정치인으로서 무력감을 느끼기도 했습니다.
Q. 시의원 시절 의정 활동에 대한 철학이 있으셨던 것 같습니다.
시의원은 결국 조례를 만드는 자리이기 때문에 시민들의 삶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칩니다. 저는 처음부터 ‘시민이 체감하는 조례’를 만들고 싶었고, 그러려면 시민이 조례 설계 단계부터 함께해야 한다고 봤습니다. 그래서 각계각층이 참여할 수 있는 상설 기구를 만들고, 제도 설계에 의견을 낼 수 있는 구조를 만들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조례가 단지 공무원 책상 위에서 완성되지 않도록 말이죠
지금도 ‘쓸모 있는 도구’가 되기 위해 움직이고 있습니다.
Q. 의원직을 내려놓은 지금, 김근재라는 사람은 어떤 정체성을 갖고 있나요?
돌아보면 제가 했던 활동은 누군가에겐 부족했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 안에는 진심이 있었고, 무엇보다 서민의 애환이 묻어 있었습니다. 저는 늘 약자의 편에서 정치를 하고자 했고, 그 마음은 지금도 같습니다. 요즘 이재명 대통령이 자주 하시는 말 중에 “쓸모 있는 도구가 되겠다”는 표현이 있습니다.
저 또한 그러고 싶습니다. 시민이 필요할 때 언제든 꺼낼 수 있는 도구, 믿고 맡길 수 있는 사람. 저의 정치란 결국 그런 사람이 되기 위한 여정입니다.
의견을 정리하며
정치인은 자리를 내려놨을 때 비로소 진짜가 드러난다. 김근재 전 시의원은 지금도 지역 골목을 돌며 민심을 듣고, 가게 앞을 지나가는 주민들과 눈인사를 나눈다. 여전히 그는 '목포의 정치'를 고민하는 사람이다. 그러나 정당도, 의회도 아닌 ‘사람’ 중심의 정치 말이다. ‘김근재’ 그 이름은 한때 시의원이었지만, 지금도 누군가의 ‘마음 깊은 곳의 응원자’로 살아가는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