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책마을 출판동네_ 역사 드라마에 가장 적합한 인물을 꼽는다면

역사 드라마의 성공조건 스토리를 구상하기에 적합한 캐릭터 ‘모순적 요소의 공존’ 문제를 해결해야 인간은 어떻게 사는 것이 올바르게 사는 것인가

2023-11-24     박현찬 기자
사진 출처 : KBS

 

정통 사극이 돌아왔다. 한동안 공중파 방송에서 사라졌던 정통 역사드라마가 다시 돌아왔다. 아마도 총선을 앞둔 정치의 시즌과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한국방송공사(KBS)5년의 공백을 깨고 2021년 12월에 편성했던 대하사극 <태조 이방원> (연출 김형일, 극본 이정우)에 이어 지난 11()부터 <고려거란전쟁> (연출 전우성, 극본 이정우)의 방영이 시작되었다. 드라마의 설정만 역사시대일뿐 사실상 현대극의 로맨스판타지에 다름없던 퓨전역사극이 지배하는 드라마 환경에서 정통 역사극을 기다리던 시청자들에게는 반가운 일이 아닐 수 없다.

 

KBS<고려거란전쟁>까지 총 34편의 정통 역사드라마를 방영했다. 공중파 채널로 한정해도 그동안 방영된 역사 드라마를 모두 합치면 근 백 편에 육박하리라. 수많은 역사드라마에서 가장 어울리는 인물은 누구일까. 필자는 삼봉 정도전(三峯 鄭道傳)을 꼽아본다.

 

학계와 일부 지식층 사이에만 머물던 삼봉에 대한 관심이 대중들에게 널리 퍼지게 된 결정적 계기는 1996년부터 2년여 KBS에서 방영되어 49.6%라는 기록적인 시청률을 기록한 드라마 <용의 눈물>(연출 김재형, 극본 이환경)이었다. 그리고 지난 2014, 삼봉의 이름을 전면에 내건 드라마 <정도전>(연출 강병택 이재훈, 극본 정현민) 역시 대중의 주목을 받았다. 두 편의 팩션(Fact+Fiction) 드라마, 그것으로 대중의 가슴에 삼봉을 조선왕조의 설계자로, 민본적 개혁가로 각인시키기에 충분했다.

 

삼봉이라는 역사적 인물은 스토리를 구상하기에 매우 적합한 캐릭터이다. 드라마에 등장하는 삼봉은 어떻게 그토록 강렬한 인상을 남기게 되었을까. 그의 삶 자체가 드라마적인 요소를 많이 갖추고 있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대개 누군가 위험에 부딪쳐 그것을 극복하는 스토리에 관심을 가진다. 그리고 이때 스토리가 성공하는 관건은 그 스토리에 드라마적인 요소가 얼마나 풍부하게 담겨있는가 하는 점이다. 스토리텔링 전문가들은 드라마의 핵심을 누군가 어떤 일을 하려고 대단히 노력하는데, 그것을 성취하기는 매우 어렵다라는 문장으로 압축한다. 그래서인지 드라마 속 인물은 대부분 자신의 목표를 위해 장애물과 부딪치고 싸운다. 대립과 갈등의 상황 속에서 장애물과 대결하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애쓰고 노력한다. 고민하며 투쟁하는 인물들의 행동으로 이루어지는 사건은 그 과정 자체가 엮여져 드라마가 되고 스토리가 된다. 그런 이유로 드라마의 성공은 인물들 사이에 대립 갈등구조를 어떻게 형상화하느냐의 문제에 좌우된다.

 

 드라마 의 주요 장면 : 사진 출처_ 이데일리, KBS

 

삼봉 정도전은 고려의 멸망과 조선개국이라는 변혁의 시기를 살았고, 그 자신 혁명의 주역으로서 민본의 가치와 자신의 신념을 위해 목숨 걸고 분투했다. 더구나 그의 사상은 이전 시기의 귀족적 보수이념과 대결하는 개혁적 진보사상이었다.

 

삼봉은 우리 역사에 유례가 없을 정도로 정치지도자로서 이상과 현실의 문제를 치열하게 고민해나간 인물이다. 그는 자신의 전 생애를 통하여 정당한 현실권력을 창출하는데 헌신하고, 권력을 만든 다음에는 그 권력이 사유화되지 않고 공적가치로 작용하도록 신명을 바쳤다. 삼봉이 추구한 혁명은 단순한 정권의 교체가 아니었다. 인간은 어떻게 사는 것이 올바르게 사는 것인가 하는 근본적인 과제에 답하기 위한 집요한 추구였다.

 

그렇기에 삼봉의 생각과 행동은 동시대 고려 말의 개혁 동지들은 물론 혁명 후 조선에서도 수많은 적대자들과 만날 수밖에 없었다. 삼봉은 어떤 장애물 앞에서도 멈출 수 없었다. 동학 포은(圃隱)이 멈출 때도 그는 개혁을 지속했고, 대업의 동지 이방원(李芳遠)이 치명적인 태클을 걸어와도 이상을 포기하지 않았다.

 

통상 조선왕조의 정치를 왕권과 신권 사이의 대립과 견제의 구조로 파악하는데, 이러한 구조의 핵심에는 재상중심(宰相中心)의 관료 지배체제가 놓여 있으며 그 모델의 설계자는 삼봉이다.

 

태조 이성계는 <조선경국전(朝鮮徑國典)>을 받아들고 삼봉에게 묻는다. 백성을 다스리는 주체가 군왕이 아니라 재상이 되어야 하는 이유가 무엇인지를.

삼봉은 주저하지 않고 대답한다. “현명함과 똑똑함이 일정치 않은 세습군주의 전제정치로는 현인정치에 입각한 민본정치, 위민정치를 보장할 수 없습니다. 그렇기에, 천하 만민 가운데서 정수분자를 뽑아 선비 현인 집단을 양성하고, 그 현인 집단에서 또 다시 엄정하게 능력을 평가하여 관료를 선발합니다. 그리고 관료 중에서 최선의 인물을 재상으로 임명하여 정치를 맡깁니다. 그는 세습이 아니므로 항상 조심하며 민본정치에 매진할 것입니다.”

 

흔히 정치는 이상이며 동시에 현실이라고 하지만 삼봉은 이상주의와 현실주의를 한치의 빈틈도 없게 밀착시켰다. 정치는 현실적으로 지배질서를 전제로 하기에 사회에 질서를 만들어주는 권력의 중심체를 창출하기 위해 새로운 왕조를 세우는 혁명을 단행했다. 대개의 정치가는 이 지점에서 개혁을 멈추고 지배에 몰두한다.

 

하지만 삼봉은 여기서 멈추지 않았다. 그는 지배권력의 중심 그 자체를 어떻게 제한할 것이냐의 문제로 나아갔다. 군왕에게 권력을 제공하는 동시에 그 왕권을 제약해야 한다는 모순적 문제와 정면으로 대결했다.

사회질서가 정립되고 그것이 지속적으로 유지되기 위해서는 항상 모순적 요소의 공존문제를 해결해야 한다. 삼봉이 추구하는 민본의 정치질서 역시 모순적 가치의 공존을 통해서만 실현된다는 점에서 태생적으로 긴장을 함축하고 있었다. 삼봉의 삶과 사유가 필연적 모순을 품고 있을 수밖에 없는 이유다.

 

생각해보자. 인간의 삶의 조건 자체가 차이와 대립, 이해관계의 충돌로 가득 차 있는데 도대체 일차원적인 선악의 구분이나 피아의 구분으로, 일방의 타방에 대한 제압이나 정복으로 어떻게 진정한 혁명이 이루어질 수 있으며 또한 유지될 수 있겠는가. 역사의 진보는 언제나 모순적 대립적 가치의 공존을 통해서만 지속된다. 그렇기에 삼봉이 처한 모순은 회피하거나 부인할 일이 아니었다. 적극적으로 수용하고 공존의 지혜를 도출해야 하는 소명일 뿐이었다. 그러한 실체적 진실에 자신의 전 생애를 걸었던 인물, 그가 바로 불세출의 정치가 삼봉 정도전이다.

 

권력을 욕망하는 현실의 인간들에게 비극적인 최후를 맞이할 수밖에 없었던 인물, 시대를 넘어 존재의 모순과 대립을 온 몸으로 살아낼 수밖에 없었던 인물이 바로 삼봉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태생적으로 역사 드라마의 주역으로 부합되는 인물로서 삼봉 정도전보다 더 적합한 인물을 발견하기 어렵다. 아마도 그것이 바로 우리가 삼봉을 찾는 이유이고 삼봉의 드라마가 힘이 있는 이유가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