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반백년 청소년 운동에 바친 나의 삶, 원주YMCA 김영하 사무총장
다시 태어나도 사랑스런 청소년과 함께 하겠다
단계주공아파트 맞은편 인도를 따라 걷다보면 하나로마트 4거리 못미쳐 청소년수련관이 자리하고 있다. 원주YMCA(원주기독교청년회) 김영하 사무총장을 만나기 위해 청소년수련관 4층에 위치한 사무실을 찾았다. 김 총장은 10대 초반부터 60대 중반을 바라보는 지금까지 원주YMCA와 삶을 같이 한 원주 청소년 운동의 산 증인이다. 첫인상에서 무척 선한 분이라는 느낌을 받았다.
Q) 원주YMCA와 어떤 계기로 인연을 맺으셨는지요?
- 제가 기독교 모태신앙인데요, 중학교에 입학한 후 같은 교회 장로님의 권유로 원주YMCA 회원으로 가입하게 됐습니다. 당시 원주YMCA 태동기라 장로님께서 입회비를 내주셨던 기억이 납니다.
Q) 본격적으로 YMCA 활동을 시작한 건 언제부터인지요?
- 중고등학생 시절에는 학생부 활동을 했습니다만 활발히는 못 했구요, 대학에 입학한 후 YMCA 학내 동아리를 조직해 양로원 봉사활동, 불우이웃돕기 일일찻집, 농촌봉사활동, 재활촌에 도움의 손길 주기 운동 등을 펼쳤습니다.
Q) 언제부터 실질적으로 원주YMCA를 이끌게 되셨는지요?
- 대학을 졸업한 후 1984년에 원주YMCA 간사를 맡으면서 이사장님과 이사님들의 가르침을 받으면서 원주YMCA의 실무적인 책임을 총괄하게 되었습니다. 변변한 사무실도 없어서 이곳저곳 사무실을 옮겨다녔던 힘든 시절이었습니다. 30대 초반에 원주YMCA 사무총장을 맡으면서 청소년 활동을 비롯한 원주 지역 현안에 대한 활동의 폭을 넓혀나갔습니다.
Q) 원주YMCA 사무총장을 맡아서 왕성하게 활동하던 시절 기억에 남는 일이 있다면요?
- 네, 사회교육의 일환으로 아기스포츠단을 운영한 일, 수십년을 이어오는 어린이날 행사, 장난감축제, 부부축제, 청소년축제, 환경정화활동 등이 특히 기억에 남습니다.
Q) 원주YMCA 사무총장 이외에도 여러 직함을 맡아서 지역사회 발전을 위한 활동을 많이 하셨는데 어떤 분야의 활동들이었는지요?
- 청소년상담복지센터 센터장을 맡아서 청소년들이 가지고 있는 여러 문제들에 대한 상담을 진행했구요, 한국YMCA 원주중고등학교 교장을 맡아서 제도권 교육에서 방황하는 청소년들이 새로운 배움의 길에 정진할 수 있도록 도와주기도 했습니다. 협동사회경제네트워크 이사장을 맡고서는 지역사회 사회적경제 발전을 통해 새로운 일자리를 창출하는 방안에 대해 많은 고민을 하기도 했습니다.
Q) 원주YMCA 사무총장으로서 정치적으로 첨예한 문제에 대해 목소리를 높인 적도 있었을텐데요?
- 네, 정치적으로 민감한 문제에 부딪쳐서 정말 지역사회를 위해 맨몸으로 싸운 경우도 많았습니다. 화상경마장 설치 반대운동 집행위원장을 맡아서 오랜 기간 설치 반대운동을 이끌면서 결국 도박성이 강한 화상경마장의 원주 진입을 막기도 했습니다. 미군부대 캠프롱 기름 유출 시민대책 집행위원장을 맡아서 우리나라 최초로 미군부대 내 기름 유출로 인한 토양 오염에 대해 국가 배상을 이끌어내기도 했구요, 총선연대 원주집행위원장 활동을 하면서 입후보 부적격자 낙선 운동을 펼치기도 했습니다.
Q) 50년 세월 원주YMCA와 삶을 같이 했는데, 아쉬움으로 남는 일이 있다면요?
- 제가 무능해서 반백년 세월 원주YMCA 활동을 하면서 번듯한 자체 건물을 마련하지 못한 것은 회한으로 남습니다. 두어차례 원주YMCA 회관을 마련할 기회도 있었습니다만 결과적으로 아지까지 미완의 희망사항으로 남아있습니다.
원주YMCA 김영하 사무총장과 인터뷰를 가지면서 50년의 세월을 부귀도 명예도 따르지 않는 활동에 매진한 그의 삶의 족적이 새삼 존경스러웠다. 앞으로 남은 그의 여생도 지역사회 청소년들과 지역사회 발전을 위한 주춧돌 역할이 되기를 바라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