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자․한문으로 그리는 세상 스케치] 사랑과 미움

- 맹목적인 감정의 쏠림은 위험하다 - 사랑하더라도 단점을, 미워하더라도 장점을 알 수 있어야

2022-09-23     남궁원 기자

   고슴도치에게 참으로 모욕적인 속담이 있다. ‘고슴도치도 제 새끼는 함함하다고 한다.’라는 속담이 바록 그것이다. 풀어 말하면 털들이 바늘같이 꼿꼿한 고슴도치일지라도 제 새끼의 털이 보드랍고 반지르르하다고 여긴다는 건데, 자기 자식의 나쁜 점을 알지 못하고 도리어 자랑삼는다는 뜻으로 이르는 말이다. 이게 어찌 고슴도치에게만 적용할 말인가? 사람 사는 세상에도 비일비재한 일이라서 그걸 경계하느라고 속담에 이르도록 유행한 말인데 하필 고슴도치가 걸려들었다.

(사진: 고슼도치 - 국립중앙과학관 제공. 네이버 지식백과)

   부모의 자식에 대한 시선이 대개 이러하다. 내 어머니를 포함해서 우리의 어머니들이 특히 더 그러한데 이것을 꼭 비난할 일만은 아니다. 하지만 공정성과 객관성을 지니지 못한 채 사랑하는 대상(혹은 미워하는 대상)을 바라보고 평가하고 대응하는 것을 실로 위험하기 그지없다.

   학교에서 교사로 살다 보면 문제 행동을 하는 학생들을 종종 만나게 된다. 서너 명의 장난꾸러기들이 모여서 크고 작은 사고를 치고 그게 발각되면 지체 없이 학부모를 학교로 오게 하여 사후 전말을 알리고 재발 방지를 당부하면서 어떤 처벌을 받게 된다는 사실을 통보한다. 그때 갑(), (), (), () 등 네 학부모의 반응은 판에 박은 듯 같다.

우리 아이는 착하기 그지없는데 친구를 잘못 사귀어서 이 사달이 났다.’는 것.

   갑, , , 정의 네 부모가 모두 그렇게 생각하고 있다면 다른 벗에게 악영향을 끼친 그 좋지 않은 친구는 도대체 누구일까?

   미움 하면 생각나는 것 중에 며느리가 미우면 발뒤축이 달걀 같다고 나무란다.’는 속담도 있다. 몹시 미우니까 예쁘고 고운 것마저도 단점이라고 지적하고 꾸짖는다. 옛날에 만들어진 말이니까 요즘과는 거리가 있기는 하지만 미움이라는 감정에 매몰되어 이성을 잃곤 하는 우리의 속성을 날카롭게 찌르는 경구(警句)이다.

 

愛而知其惡(애이지기악), 憎而知其善(증이지기선)

사랑하되 그의 단점을 알고 있어야 하며, 밉더라도 그의 좋은 점을 알아야 한다.

소학(小學)경신편(敬身篇)에 있는 글이다. 원래 이 글은 예기(禮記)의 곡례(曲禮)에 있는 것인데 이를 뽑아서 소학에 넣어두었다.

   누구든지 장단점은 모두 있게 마련이다. 기독교 성서는 의인은 없나니 한 사람도 없다.’라고 분명하고 크게 못 박아 기록해 두었다. 장자(莊子) 식으로 보면 장단(長短), 미추(美醜), 선악(善惡)이 모두 상대적이니까 절대적으로 장점과 아름다움과 선함만을 갖춘 존재는 아예 없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누군가를 너무나 사랑하면 좀처럼 그의 단점을 알아보지 못한다. 당연히 미워하는 사람이 있으면 남들이 다 인정하는 그의 장점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도리어 경멸하거나 무시하고야 만다.

   앞에서 얘기한 부모의 자식에 대한 무조건적 사랑은 천륜에 따른 것이라서 당연한 것이고 긍정적인 면이 있기도 하다. 그런데 이것을 청춘 남녀의 문제로만 옮겨 보아도 상당히 심각한 상황으로 변모한다. A군과 B양이 있다고 치자. A군은 B양의 수수함이 좋다. 머리모양이 가끔 정돈이 안 된 채 만나지만 꾸미지 않고 솔직한 용모가 좋다. 언설(言說)도 직설적이고 거침이 없어서 시간을 절약하며 많은 대화를 나눌 수 있다. 항상 헐렁한 바지만 걸치고 있는 모습도 건강하고 활발하게 보인다. 왜냐하면 A군은 B양이 너무 사랑스럽기 때문이다. 이른바 눈에 콩깍지가 씌었기 때문이다. 그러다가 막상 결혼한 후에 정신을 차려보니까 그게 아닌 거다. 수수하고 솔직하고 거침없고 건강하며 활발한 게 꼭 장점만은 아니라는 생각을 하기 시작한다. 얼마 정도 시간이 흐른 뒤 둘 사이가 틀어지면서 일은 더 꼬이게 된다. 마침내 AB를 미워하게 되었고 그러자 이제 AB의 그 모든 게 단점으로만 보인다. 결혼 사유가 이혼 사유로 바뀌어 최악의 경우로 치달을 수도 있다.

   그러니까 미리 사랑할 때부터 상대방의 단점을 단점으로 알고 있어야 하는 것이다. 단점을 단점으로 인지하고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것을 넘어 사랑할 때 진정한 사랑이 되는 것이다. ‘당신의 단점이 내가 당신을 사랑하는 데에 걸림돌이 되는군요. 하지만 나는 그 걸림돌을 디딤돌 삼고 단점의 강을 건너면서 당신을 사랑한답니다.’ 다소 느끼하지만 이 정도까지의 말로 고백할 수 있어야 제 정신을 갖춘 정상적 사랑이라 하겠다.

   그래도 남녀와 같이 개인 간의 문제는 사적 차원에서 이루어지는 일들이라 사회나 국가를 위험에 빠뜨리지는 않는다. 정말 걱정스러운 것은 정당이나 사회 계층, 연령별, 성별, 종교별, 지역별로 나누어져 자기 편은 무조건 선하고 옳은데 상대방이 악하고 틀렸다고 싸워대는 사태다. 언제부턴가 사이비 사자성어 내로남불이 버젓이 통용되다 못해 아주 인기 있는 어휘가 되었다. 순우리말과 한자어와 영어가 혼합된 출처 불명의 이 낱말이 유행어로 자리잡았다는 현실이 슬프다. ‘내가 하면 로맨스(Romance), 남이 하면 불륜(不倫)’. 이걸 좀 더 확대 적용해서 우리 편이 하면 모두 낭만, 너희들이 하면 범죄로 불어나게 된다. 동일한 행위, 같은 성격임에도 우리 편의 것이면 바람직하다며 박수 치고 상대방의 것이면 헐뜯기에 여념이 없다. 각 분야의 지도자급 인물들이 이런 선택적 몰이해를 말리기는커녕 더욱더 부추기는 것도 큰일이다.

(사진: 주공상  - 한국인문고전연구소 중국인물사전. 제공.  네이버 지식백과)

   ‘愛而知其惡(애이지기악), 憎而知其善(증이지기선)’ 은 주공(周公)의 말이다. 주공은 기원전 1100년 쯤의 사람이니 대략 3,300년 전에 이런 말을 했다. 역사가 발전하고 문명이 성장한다는 게 뭘까? 설사 발전하고 성장했다고 치더라도 사람의 지혜와 안목은 퇴보하는 것 같다. 자세를 바르게 하고 눈을 똑바로 뜨고 마음의 평정심을 찾아야 한다. 그래서 세상을 보든 사람을 보든 통찰력을 갖고 공정하고 객관적으로 파악할 수 있어야 한다. 그래야만 맹목적인 사랑과 미움의 위험에서 벗어날 수 있다,

 

[한자 풀이]

() 사랑하다.        () 그러나, ~하지만        () 알다            () , 그것          () 모질다                  () 미워하다

() 착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