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은 날의 나에게! 깊어가는 가을밤 몇 자 적어본다.
그 시절 나태와 게으름이 후회된다, 조금 더 부지런했을 걸
요즘 코로나19로 몸과 마음이 정상이 아니라고? 나태의 굴레에서 갇혀 있다고? 이런 날들이 지속되다 보니 이제는 익숙해지는 것 같다고? 코로나 환자는 아니지만, 환자처럼 아주 독한 슬럼프에 빠져 있어 힘들다고? 다른 이들은 안 그럴 것 같은데 나만 그런 거 같다고? 내 글을 잘 읽어 보게나.
먼저 하고 싶은 말이 있는데, 나는 슬럼프란 말 대신 그냥 ‘게으름’이라고 표현하고 싶은데 어떤가? 슬럼프란 말보다 솔직한 표현을 쓰자. 왠지 나 자신을 속이는 것 같은 슬럼프란 단어보다는 처음부터 그냥 게으름이나 나태라고 하는 게 어때?
나는 사회에서 조직생활을 5년 정도밖에 하지 못했어. 자율성이 없는 조직생활보다는 누구에게도 구속받지 않는 개인사업이 맞는 거 같아서 20여 년 개인업을 했지.
조직생활이 싫은 이유는 부친의 영향도 있었지. 오랜 군 생활로 뼛속까지 군인이었던 부친의 모습이 내겐 그리 멋지게 보이지 않았고 고지식하게만 보였지. 그런데 그런 내가 군 생활을 너무 빡세게 한 거야.
나는 군 생활을 ‘경호단’에서 30개월 했어. 대통령을 경호하는 경호부대의 군기와 훈련은 일반인은 상상하기 힘들었고 너무 조직적이었는데 지금까지 나의 성격과 삶, 사회생활에 적잖은 영향을 주는 거 같아. 그래서 더더욱 사회생활만큼은 구속보다는 자율, 그런 걸 더 우선으로 했지.
그런데 자율은 늘 내가 중심이 되어 스스로를 관리하지 않으면 안 되는 삶이야. 항상 자기관리에 신중해야만 했는데 지금도 나는 ‘자기관리’라는 화두와 싸우고 있어. 그 싸움에서 지기도 하고 이기기도 하는 나와의 전투를 지금도 하고 있는 거지.
사람의 목적 중엔 ‘돈의 축적’이 있는데 부인하는 사람은 없을 거야. 돈을 쫒다 보면 감정과 감성, 육체적 피로를 무시하곤 하지. 그러다 보면 그에 대한 보상심리로 절제 못하는 낭비와 방탕에 빠지기도 하고 게을러지거나 나태해지곤 해.
하지만, 그건 인간이기 때문에 그럴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나 역시 개인사업을 하다 보니 안팎에서 눈치 볼 이유가 없고 그러다 보니 슬럼프와 나태에 쉽게 빠지기도 하고 즐기기도 했지.
나는 게으름, 슬럼프, 나태를 ‘관성’에 비유하고 싶어. 자전거에 첫 페달 밟을 때 힘들고, 자동차 첫 바퀴가 가장 느리게 움직이며, 아침에 깨어나 이불속 첫 움직임이 가장 힘들듯이 정지 상태를 깨기 위한 첫 움직임이 힘든 건 ‘관성’이란 놈이 눌러버리고 있기 때문이야!
그래서 ‘게으름, 나태, 슬럼프’를 ‘관성’이라고 비유하고 싶다. 쉽게 말해 게으름과 나태라는 관성에 눌려 있는 상태라는 얘기지. 그런데, 사람들은 게으르고 나태한 자신이 싫다고 말하면서도 그 게으름과 나태의 일상에 익숙해져 즐기고 있단 말이지. 특히 요즘같이 개개인의 활동을 강제로 통제하는 시대에선 더 합당한 핑계가 된단 말야. ‘슬럼프, 게으름’에서 벗어나고 싶다고 말하면서도, 실은 그걸 즐기고 있단 말이지.
젊은 나에게! 그대가 슬럼프, 나태, 낭비, 쾌락을 즐기고 있다면 그대를 위해 덕담 한 마디 해줄게. “슬럼프란 더 생산적인 내일을 위한 재충전의 기간이다.” 됐지? 좋지?
그러나, 위의 덕담은 진심이 아냐. 너무 오래 나태하면 안돼. 낭비와 쾌락을 찾아 방황하면 자아가 부패하거든. 그러면 그대의 아름다운 육신과 영혼이 슬퍼지는데 그러기엔 한 번뿐인 인생이 너무 아깝잖아. 어머니 뱃속에서 그 치열한 경쟁을 뚫고 세상 빛을 본 그대가 그렇게 인생을 의미 없이 보내서야 되겠어?
그러니까 게으름, 슬럼프, 아니 나태에서 벗어나겠다고 스스로 각오하고 마음을 다시 잡아주게. 혹시 그대의 슬럼프와 게으름을 누군가의 자극으로 바로 잡아주길 기다리고 있는 건 아닌가? 어떤 충격적 사건의 발생, 친구나 선배의 따끔한 충고, 아니면 만취 후 새벽 숙취 속에서 갑자기 느끼는 깨달음 같은 것? 인간은 그런 걸 느낄 때까지 자신의 게으름 해결 방안을 유보하기도 하지. 그런 건가? 그럼 안 되네! 그런 자극은 없어! 기대하지 마!
정말 중요한 자극은 나 자신이야. 지금 내 문제에 대한 위험성과 반성의 생각을 자극으로 받아들이고, 그걸 개선하겠다는 의지와 실천으로 옮기는 노력 없이는 외부의 소소한 자극이 백 번 온들 아무 소용없단 말일세.
정말 나태에서 벗어나겠다는 강한 의지가 있다면 코끝에 스치는 가벼운 바람에도 삶의 의욕을 새롭게 찾을 수 있어. 스스로 노력이 없다면 벼락 맞거나 낭떠러지에서 떨어져도 늘 같은 상태라네.
나는 젊을 때도 지금처럼 4계절 중에 가을을 제일 좋아했지. 가을만 되면 화가, 시인, 가수가 되기도 하지. 특히 11월이 되면 유독 감정이 깊어지고 많이 우울해지곤 해. ‘감정과 우울의 계절’이라고 자기암시를 주며 그 감정을 해소한다고. 술도 마시고, 음악을 듣고… 그러면 더 감상적으로 되고… 지금 생각해 보면 그걸 은근히 즐겼어.
덜 굳은 상처 딱지를 톡, 톡 건드리고 살살 뜯어낼 때 따끔따끔 아프지만 재밌잖아? 내 젊은 날의 모습은 덜 굳은 상처 딱지를 뜯듯 아픔과 재미를 만들며 즐겼던 모습이 아닌가 생각해.
그런데 나이 먹고 가정을 꾸리다 보니 현실에 내 감정을 담을 수 없었고 내가 바뀌게 되더라고.
이렇듯이 감정은 육체의 버릇이야. 즉, 활동이 적으면 일조량이 부족하고, 일조량이 부족하면 우울해지고 그러다 보면 술, 담배가 과해지고 운동과 멀어지게 되는 거야. 악순환의 고리에서 벗어날 수가 없다는 거지.
감정을 관리하는 건 지혜로운 건데 관리 방법 중 하나는 운동이야. 운동은 혼자서도 할 수 있지만 클럽 등 여럿이 함께 하는 장소가 좋을 거 같아. 그래서 나는 지금도 복싱장을 다녀. 그곳에서 격하게 육체를 혹사해. 그러면 땀에 흠뻑 젖는데 물을 많이 마셔서인지 이상하게 술 생각이 없어져.
담배는 20여 년 전에 끊었지. 끊은 이유 중 하나는 버스에 앉아 있는 내 위로 어떤 남자가 콧바람을 내뿜는데 거기서 나오는 담배 냄새가 너무 고약했어. 그때부터 나도 남에게 이런 냄새를 내뿜으면 안 된다는 생각에 바로 끊었지. 지금도 그 고약한 냄새를 기억할 정도야.
담배는 단 하루라도 먼저 끊어주면 내 건강과 이미지 개선에 큰 도움을 줄 거야. 전혀 도움 안 되는 건 하지 마. 담배와 술이 대표적인데 몸도 몸이지만 마음을 위해서야. 중년이 되니 술 먹으면 마음이 아플 때가 더 많아져.
또한, '목표'를 갖는 거야. 나태, 게으름, 슬럼프 등은 목표가 흐려질 때 자주 찾아와. 중년의 나이에 무슨 새로운 목표가 있겠냐고? 목표가 있지! 내 목표는 멋진 중년, 건강한 중년, 스마트한 중년이 되는 건데 그 '멋진'이라는 게 무척 애매하긴 해.
목표는 원대할수록 좋지만 너무 멀거나 높으면 실천하고 결과를 얻기 힘들어. 그래서 나는 좀 작고 구체적인 목표를 세워. 짧게는 한 달이나 몇 달 정도의 목표를 세워. 지난봄에 세운 7개월 목표는 11월까지 체중을 10kg 감량하는 목표였지! 현재 8kg을 뺏어.
가을에 허리끈 있는 짙은 바바리를 폼 나게 입고 싶어 감량을 계획했는데 많이 힘들었지. 음식과 운동으로 감량한다는 게 중년의 호르몬들이 쉽게 허락하지 않았지만 그걸 넘었다.
젊은 나에게! 슬럼프에서 벗어나고 싶어? 벗어남의 시작은 '오늘'이고 지금부터야. 늘 오늘과 지금이 중요해. 오늘 할 일을 내일로 미루지 말라는 것처럼 오늘 자전거의 첫 페달을 밟듯 시작이 중요하고 그런 시작 시간이 조금조금 모이면 내가 바뀌게 된다는 거지.
나태가 관성이라고 했지? 오늘 시작하는 습관은 조금조금 쌓여 ‘분주함’이 되어 나태의 관성을 깬다. 그러면 그대의 운명도 바뀔 수 있다 이거지!
자, 이제 글을 간단히 정리하겠어
첫째. 나태하지 말고 은근히 즐기거나 습관화하지 마. 즐길 거면 삶이 힘들다고 말하면 안 돼.
둘째. 운동하자. 몸을 움직이고 무수히 새로운 사람을 만나고 내 일을 찾는 거야. 절주하고 일찍 자고.
셋째. 오늘 할 일을 내일로 미루지 말길. 지금 안 하고 내일로 미루면 나태를 즐기고 있다는 얘기야.
넷째. 마지막으로 삶이 힘들고 어려워도 나 자신을 사랑하는 거야. 세상의 모든 것은 흘러가고 지나가는 거야. 지나고 나면 별거 아닌 것이 삶이야.
그러니 젊은 그대! 용기와 희망을 품고 슬럼프를 벗어나시게. 인생의 시간은 정말 빠르니 순간순간을 의미 있게 보내시게.
2021. 시월의 어느 밤, 젊은 날의 나에게... 지금의 내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