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보다 다른 체험을 하게 하는 공간들
닫힌 공간 vs 열린 공간
1. 영화관과 연극 무대
내가 처음 영화관에서 영화를 본 게 초등학교 4학년 때였다. 알랭 드롱을 좋아했던 둘째언니가 어린 나를 데리고 한국 번안 제목으로는 '고독' 원제목은 'Le Samourai'를 보러 갔다. 그 당시 영화 내용이 무엇인지 알지도 못하면서도 기억에 남는 것은 혼자 사는 주인공이 외출할 때마다 문 앞에 있는 거울을 바라보며 중절모의 가장자리를 손으로 만지는데 그 행동에서 어린 내가 주인공의 외로움을 느꼈던 것이다.
그러면서 영화의 매력에 빠지게 되었고 그 후로 나는 언니와 함께 영화를 자주 보러 다녔다. 영화관에 들어가 좌석에 앉아 불이 꺼지고 화면이 환해지면서 영화가 시작되면 나는 한국 서울에 사는 내가 아니고 어느새 영화 속의 세계에서 주인공으로 살기 시작한다. 두 시간이 채 안되는 러닝타임 동안 나는 여기가 아닌 다른 어느 곳에서 주인공으로 신나게 멋지게 드라마틱하게 살다가 깨어나 현실로 돌아왔다. 그 짧은 그러나 진하게 경험하는 세계가, 그런 세계를 보여주는 영화가, 그런 영화를 상영하는 영화관을 어찌 좋아하지 않을 수 있을까?
중학교에 입학한 후로 나의 관심분야는 연극으로까지 넓혀졌다. 연극 소극장은 영화관과는 또 다른 매력을 느끼게 했다. 거림감을 주는 영화와는 다르게 연극무대에서 보여주는 세계는 손에 잡힐 듯 현실적이었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현실인 듯 현실이 아닌 세계가 목전에 펼쳐지는 것이 신기했다. 더우기 연극배우들이 연기하는 연극 속 인물들은 내가 살고 있는 현실에서 충분히 만나고 알 수 있는 인물들이었기 때문에 나는 그들에게서 인생의 아픔과 기쁨을 느끼면서 다양한 인간 군상들을 만나기도 했다. 이처럼 영화관이나 연극무대는 한계가 있는 닫힌 공간이면서도 또 다른 세계와 인물들과의 만남을 주선하는 열린 공간이기도 했다.
2. 기차역과 공항
내가 5살 때 결혼하여 대구에 살게 된 큰언니에게는 고만고만한 자녀가 4명 있었다. 즉 초등학생이었던 어린 내게는 나와 나이 차이가 별로 나지 않는 조카가 있었던 것이다. 시부모님과 함께 살면서 어린 자녀들을 혼자 양육하기 힘든 언니는 1년에 두 번 유치원 방학이 되면 큰조카와 둘째조카를 서울 우리집으로 보냈다. 그럴 때마다 서울역에 조카들을 마중하러 나갔는데 그 때마다 역을 가득 채우는 사람들의 소리와 부산한 움직임이 좋았다.
어릴 땐 그것이 정확하게 어떤 것인지 잘 몰랐다. 그냥 보고싶은 조카들이 오니까 들뜬 기분으로 기차가 도착하기를 기다렸을 뿐이다. 엄마 손을 꼭 잡은 채 말이다. 세월이 흐르면서 어릴 때 좋아했던 그 역의 분위기는 보고픈 사람들과의 만남에서 오는 기쁨과 사랑하는 사람과의 헤어짐에서 오는 아쉬움들을 감추기 위해 평소보다 과장되게 구사하는 사람들의 몸짓 언어로 이루어졌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직장생활을 하면서 해외 출장을 다니기 시작했다. 나라 사정으로 개인들의 해외 출국이 어려웠던 1986년도에 처음으로 김포공항을 통해 홍콩을 가게 되었다. 내 생애 첫 해외 출장의 기분 좋은 긴장감과 짜릿함을 안겨주었던 공항과 비행기는 어릴 때 좋아했던 열차와 기차역과는 비교가 안되었다. 비행기라는 닫힌 공간에서 몇시간을 견디다 보면 이제껏 가보지도 못한 나라에 내가 발을 딛고 있다는 것이 너무 신기했다. 이렇듯 기차역과 공항은 지금 여기가 아닌 다른 세계로, 새로운 도시로 나를 데려다주는 멋진 열린 공간인 것이다.
지금도 닫힌 공간과 열린 공간의 연속과 교차점에서 나는 여기가 아닌 다른 어느 곳을 다니며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며 나의 지경을 넓히며 살아가고 있다.